여행 이야기

로열 골지 다리 공원: Royal Gorge Bridge & Park

Barram 2021. 6. 8. 14:51

콜로라도 여행을 준비하고 있던 때였다. 회사사람들과 회의중 나의 콜로라도 방문 준비 이야기가 화제로 나왔다. 이 곳 저 곳 내가 갈 장소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부장님(Associate Director)이 로열 골지 다리 공원 (Royal Gorge Bridge & Park)이야기를 하며 가족과 방문해볼 것을 강력히 추천해주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깊은 협곡을 가로지르는 현수교 (懸垂橋, suspension bridge)로 미국에서 가장 높은 높이(974 ft/297 m)에 있는 다리이다. 웹싸이트에 있는 사진과 동영상을 보니 약간 아찔한 생각이 들 정도의 깊은 협곡을 가로지른다. 개인적으로 한번 가보고픈 욕심이 솓구치기 시작한다.

Top Colorado Attractions - places to See in Southern Colorado (royalgorgebridg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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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yalgorgebridge.com

결국 이번 자동차 여행 일정에 로열 골지 다리 공원을 포함시켰다. 뉴멕시코와 콜로라도 주 경계를 지나서 북쪽으로 계속 고속도로 (25 Interstate highway)를 타고 가다보면 푸에블로(Pueblo)라는 조그만 도시가 나온다. 그 도시에서 서쪽으로 약 30여분을 달려가면 로열 골지 다리 공원을 만날 수 있다.

가는 도중에 아내가 스마트폰으로 예약을 했다. 13세 이상 성인은 $28, 6~12세 아동은 $23, 5세 이하는 무료이다. 이 입장권은 공원내에 있는 모든 시설 (곤돌라, 놀이시설, 집라인-zipline, 스카이코스터-skycoaster 등) 이용을 포함한 금액이며 다른 입장권 옵션은 없다. 다리 구경하는 것 치곤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번도 본 적 없는 대자연의 광경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지갑을 연다.

꾸불꾸불한 언덕길을 올라가다 보면 낭떠러지 비슷한 언덕 꼭대기에 다다르게 되는데 그 곳에 공원 입장소 건물이 위치하고 있다.

로열 골지 다리 공원 입장소 건물

미리 예약한 입장표를 제시하고 건물내를 통하여 공원에 입장했다. 공원에 입장하자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물시계(Water Clock)였다. 

공원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물시계 (Water Clock)

우리가 어릴때 시골에서 간혹 본 물레방아가 빙글빙글 돌아가며 시간을 알려준다. 내가 아는 물레방아는 시골 선남선녀가 이웃 몰래 소곤소곤 사랑을 속삭이던 장소, 그리고 그 속삭임을 감추어주던 은밀한 곳이다. 물론 이 곳에서는 물레방아 마냥 빙글빙글 도는 시간, 반복되는 인생살이로 표현되지만 말이다. 물레방아를 보며 사알짝 앙큼한 생각이 들어 미소를 지어본다. 

로열골지 다리 정경

공원 한 켵에 있는 전망대로 가서 다리 전경을 구경하였다. 현수교 모양으로 협곡의 양쪽 낭떠러지를 이은 다리는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만봐도 아찔한 느낌이 든다. 대자연에 도전하는 인간의 무모함, 아니면 그 용감한 기운이 정수리를 치고 올라온다. 협곡에서 올라는 강한 바람이 나의 온 몸을 때리고 나의 마음을 움츠리게 한다.

곤돌라

아이들은 처음보는 거대한 협곡과 그것을 잇는 다리의 모습에 탄성을 지르다가...  곤돌라 타는 장소를 발견하고서는 이내 그것을 타자고 나에게 조른다. 아쉽게도 곤돌라는 오늘 바람이 강해서 잠시 이용이 불가하다고 한다. 이 공원에서는 곤돌라, 집라인, 스카이코스터 등의 체험을 제공하는데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쉬워하는 아이들을 달래며 공원 전망대로 돌아갔다.

다른 쪽에서 바라본 협곡

다른 쪽에서 바라본 협곡 계곡 아래는 가파린 암석 절벽과 그 사이사이 푸른 이끼처럼 조그만 수풀이 위태스럽게 서있는 나무와 함께 자리 잡고 있다. 간혹 새 몇 마리가 강한 바람을 타고 협곡 사이를 날아간다. 아니 흘러간다. 

갑자기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Independence Day, 1996)"에서 월 스미스 (Will Smith)가 전투기를 타고 외계인 우주선과 공중전을 하다가 협곡으로 내려와 추격전을 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협곡 사이사이를 재빠르게 지나가는 장면에 비친 그 곳은 이 곳이 아닌 그랜드 캐니언(Grand Canyon)이었지만 이 곳을 보며 그 장면이 떠오른 이유는 뭘까? 갑자기 1996년 당시의 기억이 감자 넝쿨처럼 따라 나온다.

다리를 건너다가 중간에서 돌아가는 가족들. 아들 녀석이 아쉬운 듯 뒤돌아본다.

로열 골지 다리를 건너가려고 하는데 아내가 잠시 주저해한다. 아찔한 계곡 밑이 보이는 곳을 강한 바람을 맞으며 건너는 것이 약간은 무서웠나보다. 큰 숨을 한 번 들이쉬더니 "가자"라고 크게 말하며 아이들 손을 잡고 다리를 건너기 시작한다. 1929년에 그 골격이 지어져 커다란 나무판(wooden plank)으로 바닥을 깔은 이 다리는 나무판 사이에 조그마한 간격이 있는데 그 간격이 스마트 폰 두께보다 약간 큰 곳도 있다. 그래서 그 간격을 통해 다리 아래 협곡 계곡을 볼 수도 있는데... 고소공포증이 있는 분은 그 간격 사이를 보지 않는 것이 좋겠다.

다리 중간까지 왔다가 결국 아내는 다리 건너는 것을 포기하고 만다. 생각보다도 거센 바람과 더불어 사방에서 파고드는 협곡의 아득함이 그녀의 공포심을 일깨웠나보다. 결국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방문자센터로 돌아가기로 하고 나홀로 다리 횡단을 계속한다.

로열 골지 다리에 새겨진 사인

다리 횡단을 하다보면 나무판에 새겨진 로열 골지 다리 이름과 더불어 1929년에 세워졌다는 사인을 보게 된다. 이것을 보며 갑자기 드는 생각이... 도대체 사람의 인적과 통행이 많지 않는 협곡 사이로 왜 현수교를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교통의 요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차량이 척척 지나다니는 길도 아닌 듯 한데 이유가 뭐길래 1929년 이 다리를 건설할 생각을 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 다리는 텍사스 샌 앤토니오에 있는 놀이공원 (amusement park) 사업자에 의해 관광수익 목적(tourist attraction)으로 세워졌다. 교통편의을 위한 목적이 아닌 순수한 관광목적으로 1929년 6월에 착공하여 6개월만인 11월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사업초기 인근 도시로부터 다리와 다리 주변의 녹지를 공원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20년 리스 (lease)계약을 하면서 운영권을 가졌다. 하지만 경제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이 공원은 적자를 면치 못하다가 콜로라도와 텍사스에 있는 사업가 그룹에 공원과 사업운영권을 팔게 된다. 그뒤 다양한 사업체에게 그 운영권이 이전되며 다양한 시설들이 설치되고 현재에 이르게 된다. 2013년 야생 산불이 일대를 휩쓸면서 공원방문 건물 및 인근 시설을 모두 불태웠지만 현수교는 그 산불 속에서 살아남아 재보수를 거친후 2015년 5월 다시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다리를 건설할 당시 사고로 인한 사상자가 단 한명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1929년이면 거의 100년전인데 당시 이런 다리를 사고 없이 6개월만에 건설할 수 있었다는게 참 신기했다. 

또다른 관심을 끌만한 사실은 투신 자살에 관련된 것이다. 이 곳에서 투신 자살 사고는 2012년 3월부터 5월에 걸쳐 총 3번이 일어났다고 한다. 다만 그 협곡이 너무 깊고 가파라 시신을 거두는데 난관이 많았으며 결국 시청에서 로열골지 협곡 철도 사업을 하는 회사에게 돈을 주고 시신을 회수하는 일을 했다고 전해진다. 삶의 굴곡은 각자에게 다른 법이어서 그 당사자들이 왜 그런 일을 이 곳에서 했는지 알 수 없으나 자연이 주는 공포감 속에 몸을 내던졌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텍사스 주기가 나부끼는 곳까지 오다.

로열 골지 다리 양쪽으로는 미국 50개 주의 깃발이 펄럭인다. 텍사스 주 깃발이 다리 건너편에 거의 다다라서 있기 때문에 다리를 건널 생각으로 계속 가야 텍사스 주 깃발를 만날 수 있다. 텍사스 주 깃발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은 다음, 부장에게 사진을 보내며 "Here I am!!!"이라는 메세지를 보냈다. 부장이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며 자신이 찍었던 로열 골지 다리 사진을 보내준다. 다른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동질감이 느껴지며 서로의 기억을 잠시 공유했다.

로열골지 다리 측면에서 바라본 모습

다리를 건너 다시 돌아오는 길에 다리 아래 아찔한 협곡을 내려다 본다. 다리 아래 협곡에 흐르는 강물가로 철도가 나있는 것이 보이고 열차가 소리를 내며 천천히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그 열차는 캐논시(Canon city)에서 출발하는 로열 골지 관광 열차인데 가격은 비싸지만 관심이 있다면 한번 타볼만한 열차일 듯 하다. 

Experience The Royal Gorge | Royal Gorge Route Railroad

 

Experience The Royal Gorge | Royal Gorge Route Railroad

Experience a spectacular train ride through the Royal Gorge in comfort. We combine breathtaking scenery and exceptional service with delicious food.

www.royalgorgeroute.com

 

다리를 건너 돌아와보니 아내와 아이들은 놀이터 시설에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선물샵에 들어 기념품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콜로라도 스프링 (Colorado Spring)에 있는 호텔로 가는 시간을 고려하여 공원건물을 빠져나왔다.

공원 앞 주차장에 있는 로열 골지 증기 기관자

주차장으로 돌아오는데 그 앞에 세워진 1930 ~ 40년대에 쓰이던 로열 골지 증기 기관자를 발견했다. 아들녀석이 추추 트레인~!! 이라 외치며 즐거워한다. 그 곳에 사진을 찍다가 공원 바깥에서 로열골지 다리를 볼 수 있는 전망대를 발견했다.

만일 입장료가 비싸다고 생각된다고 로열 골지 다리 전경을 멀찌감치 구경하고 사진찍기 만을 원하다면 주차장 인근에 있는 전망대를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먼 텍사스에서 구경온 우리에게는 입장료만한 가치가 있었지만 말이다.

공원 바깥 전망대에서 바라본 로열골지 다리 정경

해는 아직 중천에 있지만 시간은 오후 6시가 넘어간다. 늦기전에 콜로라도 스프링에 있는 호텔로 출발한다. 섬뜩함과 아득함을 안겨주었던 로열골지 다리를 뒤로 하며,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가슴속에 간직한채 우리 가족은 또다시 길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