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토지 서문 - 박경리
작가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를 최근 읽고 있다. 구한말 그리고 일제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각기 다른 배경과 신분계층의 관점에서 풀어가고 있다. 작가 박경리의 글은 풍경의 찰나를 한폭의 수채화로 담아내는듯한 묘사와 시골사람들의 구수한 사투리를 꾸밈없이 드러내면서 사람과 자연이 어떻게 더불어 살아가는지를 은은하게 담아가고 있다. 그러한 자연스러움 속에 사람과 사람사이에 벌어지는 갈등, 사회제도에 대한 그리고 계급에 대한 불꽃같은 충돌을 담담하게 이야기해나가고 있는 소설이다.
나는 이 소설에서 작가 박경리가 그려낸 표현들을 보고 내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을 필사해보며 왜 이 표현이 나의 마음을 울리는지 글로써 남겨보고 싶었다. 아마도 이것은 부족한 내 표현능력을 이렇게 나마 표출해보기 위함일 것이다.
책이 시작되기전 작가 박경리가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은 후 느낀 그녀의 마음을 토지 제1부의 서문으로 표현한 글이 있다. 글에서 작가가 가진 생각을 꾸밈없이 적어놓은 글을 보니 그 표현 한구 한구가 내 마음 속에 들어와 고요하고 잔잔한 파동을 안겨준다. 그 표현들을 필사하며 나의 감상으로 덧칠해본다.
삶에 보복을 끝낸 것처럼 평온한 마음이다.
살면서 내자신에게 가졌던 원망, 내가 한 행동을 향한 후회, 내 마음에로의 질책... 이러한 모든 번뇌를 거치고 이루어낸 일이 있다면 잠시나마 삶에 보복을 끝낸 것처럼 평온한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고뇌스러운 희망이었다.
꿈꾸고 이루어보고자 하는 희망을 가지고 싶지만 그 꿈에 다가갈수록 고통스러지는 마음. 내가 이런 느낌을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 스스로 질문해본다. 무언가 어렴풋이 기억나는 희망의 고통. 나를 알아가고 찾아가는 고통. 이것이 고뇌스러운 희망이었나?
빙벽에 걸린 자일처럼 내 삶은 이토록 팽팽해야만 하는가.
왜 이렇게 나는 빙벽에 걸린 동앗줄처럼 스스로를 몰아부치는 것인가? 현실에 타협하고 꿈을 잊어버리고 내 눈에 보여지는 것만 신경쓰고 살면 되는 것을. 내 자신의 심연속에서 허우적리면서도 현실속으로 몰아부치는 내 삶은 왜이리도 팽팽한 것인가.
숱한 정신적 속박의 사슬
스스로를 옮아매는 감정의 잔해들, 가슴속의 추잡한 욕망, 허영심에 붕뜬 상상, 다른이들 시선에 몰리는 신경... 이 모든 것이 정신적 속박의 사슬이 되어 나의 마음을 소비시킨다.
희망의 여백은 두렵다. 타협이라는 속삭임이, 꿈을 먹는 것같은 무중력이, 내가 나를 기만하는 교활한 술수가, 기적을 바라는 가엾은 소망이... 희망은 이같이 흉하게 악화되어 가는 나를, 비천하게 겁을 먹는 나를 문득문득 깨닫게 한다.
희망의 여백은 절망으로 채워질 수 있기에, 그리고 그 절망은 원망의 칼바람이 되어 나의 가슴을 할퀴고 지나갈 것이기에, 그래서 두렵기만 하다. 결국은 나자신을 합리화하려는 악마의 속삭임이 나를 유혹해온다. 그 유혹에 패배해온 역사가 나를 괴롭힌다. 이런 역사속에 아직도 정체되어있는 나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된다.
진실은 참으로 멀고 먼 곳에 있었으며 언어는 덧없는 허상이었을 뿐이라는 얘기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옳고 그른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만 진실을 마주하는 것은 쉽지않다. 이렇게 글로서 마음을 표현하건만 언어로 표현되는 이 마음은 덧없는 허상일 뿐이다.
무궁무진한 인생의 심층을 상식으로 가려버리려는 짓이 비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다른 이의 삶을 퍽 쉽게 판단하고 이야기하고 그것에 자신의 삶을 비교하며 질투하고 안도감을 얻는다. 개개인의 삶은 무궁무진할진대 그러한 인생의 다양함을 무시하고 자신의 가치관으로 마음대로 판단하는 것에 분노하면서도 나역시 그들과 다름 없는 패거리라는 생각은 나를 비겁자로 만들어버린다.
이 밤에 나는 예감을 응시하며 빗소리를 듣는다.
빗소리가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천둥과 번개가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예감을 가지며 나는 이 자갈밭을 걸어가본다. 얼마나 힘든 길이 될 것인가. 그 힘듬 속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 할 것인가.
겨울나무가 바람에 몸을 흔들며 고엽을 떨어뜨리듯
한참 내자신과 세상 모든 이들에 대한 혐오감에 빠져 산 적이 있었다. 자신을 부정하며 세상을 냉소적으로 보고 다른이의 시선에 스스로 상처를 내던 시절이었다. 나에게 분노하고 세상에 분노하며 울분을 삼키고 삼키며 그것을 토해내기 위해 미친듯이 일에 빠져 살았다. 마치 겨울나무에 바람에 몸을 흔들며 고엽을 떨어뜨리듯이 말이다.
할 말을 줄이고 또 줄여야 하는 인내심에는 억압적 속성이 있으며, 부정적 성향에다 모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늘 현실도피를 꿈꾸고 있기 때문인데 내게는 어떤 것도 합리화할 용기가 없다.
불현듯 글로써 내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두려워질 때가 있다. 내 감정을 억누르고 가슴 속에 들어찬 말을 줄여 정제된 표현을 하려는 이 인내심에는 억압적 속성이 있는데,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감정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이성간의 모순 사이에서 늘 도망자가 되어 글을 쓸 용기를 잃을 때가 많다.
다만 죄스러움이 가끔 마른침 삼키듯 마음 바닥에 떨어지곤 한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죄스러움이 마른 침 삼키듯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마치 나락으로 떨어질 것 처럼 말이다.
박경리는 1973년, 1993년, 2001년에 거쳐 토지 제1부 서문에서 자신의 심정을 절절히 표현했다. 그 표현은 내가 살아온 삶을 휘감아 삭풍이 나무를 흔들어 고엽을 떨어뜨리듯 나를 흔들어놓았다. 글 쓰는 것을 통해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 것인가를 통렬히 느끼게 해주었다. 책을 읽으며, 필사하며, 나는 얼마만큼 스스로 솔직한 눈물을 쏟아낼 수 있을 것인가. 이 쉽지 않는 길을 따라 목적지까지 갈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