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관

[독후감] 토지 제10권 - 박경리

Barram 2021. 8. 5. 04:17

출처: 토지 10권 : 박경리 대하소설 (3부 2권) - 리디북스 (ridibooks.com)

 

토지 제10권에서는 임명빈의 여동생 임명희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상현을 사모하는 마음, 상현의 거부로 인한 굴욕감과 자포자기, 그리고 명문가 자제 조용하와 혼인 후 받는 정신적 핍박을 명희의 관점에서 잘 표현했다. 첫사랑이었던 장이와 이별하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홍이가 "뜨겁게 살 수 없다 하여 차갑게 살아야 한다는 법도 없는 것이며 사랑할 수 없다고 미움으로 살아도 아니 될 것이다"라고 스스로 되뇌는 어구는 잔잔한 공감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1923년 경남 진주에서 일어났던 백정들의 신분해방운동인 형평사 운동衡平社運動도 언급되었다. 특권층도 아닌 평민들이 자신들보다 신분이 아래인 백정을 향한 차별이 노골적으로 표출된 사건이다. 중산층이 보수화되었을때 빈곤층에 대한 그들의 시선이 더욱 냉혹하고 차별적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어찌 보면 보수적인 마음에서 출발한 다수의 폭력은 더욱더 잔혹하고 차별적이 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가진 가치관에 대한 냉철한 성찰없이 그것이 정의正義라고 믿고 그 가치관에 반하는 것에 차별과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이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그런 생각도 해본다.


자신의 문제를 자신이 해결한다. 그러나 해결을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거든.

쉬운 말이지만 현실은 어렵다. 내 자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것은 성인으로서의 내 모습에 책임지는 모습이다. 하지만 해결을 못하고 있는 현실때문에 우리는 실망감과 자괴감을 가지는 것이다. 만일 그 실망감과 자괴감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사람은 있다면 좋을텐데... 그러한 멘토(mentor)가 흔치 않는 우리나라 사회가 너무도 아쉽다.

새로운 교육을 받게 된 애초의 동기는 별로 향기롭지 못했다, 자각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미국 유학을 생각하게 된 애초의 동기는 별로 향기롭지 못했다. 남들 말마따나 영어 잘하는 전문인으로 돈 많이 벌고 사회적 지위를 높이고자 한 것이 시발점이었다. 내 부족한 지식을 충족시켜려는 자각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물론 무지했던 내자신이 자각을 먼저 했을리 없지만 적어도 흘러간 세월과 그동안 쌓은 약간의 지식이 나에게 조금이마나 자각을 맛보게 해 준 것에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도마 위에 올려놔 보세요. 난도질이야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거예요.

내가 아무리 순수한 의도로 말과 행위를 했더라도 다른 이들이 삐딱하게 바라보아 악플과 비판의 난도질이 나에게 향할 수 있다. 타인을 향한 비판하고 비난하기는 쉽다. 하지만 자아비판적 사고를 통해 스스로 깨닫는 것은 어렵다.  그리고 나의 부족함을 남들 앞에서 인정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설령 그것이 진실이더라도.

독립 운동 같은 것도 장식으로, 유행으로, 그런 식으로 이끌리는 경향이 있다면 그건 안 하는 편이 좋다.

사회운동에 참여할 때 변화가 가져올 영향과 여파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유행에 따라 장식으로 이끌리는 경향이 있다면 차라리 안 하는 편이 좋다. 우리가 처한 현실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선진국들이 그렇게 이야기한다고 무작정 따라가는 사회운동가들을 보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을 수 없다. 그 의도가 무엇인가. 정치 이슈화를 통한 정계 입문의 도구로 쓰이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만 들뿐이다.

공포와 수치의 고비를 넘긴 뒤의 편안함, 큰 병을 앓고 난 뒤의 편안함, 죄를 고백한 뒤의 편안함, 그런 것을 천천히 느끼고 있었다. 한 줄기의 실날 같은 욕망까지도 포기해버린 자유로움도 느끼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바다건너 사막의 도시에 처음 도착했을때 나는 이상하리만큼 편안함을 느꼈다. 그것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난 편안함, 마음 속 큰 병을 덜어낸 후의 편안함, 내 자신에 솔직해진 뒤의 편안함이었다. 욕심과 교만, 그리고 나자신과의 타협점마저 포기해버린 자유로움도 느끼고 있었다.

이래도 좋은가, 이래도 좋은가, 수없이 자기 자신에게 의문을 던지면서 낫질도 도끼질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내부, 자신을 둘러싼 외부와의 대결은, 그러나 언제 끝날지, 과연 끝날 수 있을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욕망과 갈등과 자포자기, 제약과 여건과 의무, 그 모든 것은 첩첩이 쌓인 가시덤불

내가 안주하던 곳을 떠나기로 결정하기까지 수없는 고민을 반복했다. '이것이 나에게 최선인 것일까?' 수없이 자기 자신에게 의문을 던지면서도 믿을 수 없는 내 자신에 수없이 칼부림을 해본다. '못난 자식, 나같은 놈이 무슨 의미있는 존재더냐!!' 투명인간같은 내 자신을 향해 칼날을 던져보건만 돌아오는 것은 허공을 가르는 소리일 뿐. 이런 류의 자기비판이 언제 끝날 것인가. 욕망, 갈등, 자포자기, 스멀스멀 올라오는 자신에 대한 분노... 그 모든 것이 첩첩히 쌓인 가시덤불이었다.

한심하다. 자기 모멸을 완전히 배제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이곳까지 와버렸다. 낯선 땅에 보내던 첫 해, 아직도 적응하지 못하고 실수를 남발하며 자신감은 땅바닥이 아닌, 땅 속 깊숙이 쳐박혀 있던 때였다. 스스로가 한심했다. 내 자신에 대한 분노를 넘어 자기모멸과 내 존재의 이유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것조차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머릿속에선 물방아가 돌고 있는 것만 같다. 갖가지 생각이 돌고 있는 것이다. 어느 마디를 꽉 잡아서 돌고 있는 물방아를 정지시키고 싶은데 그것이 안 된다. 걷잡을 수 없이 생각은 제멋대로 돌고 있는 것이다.

머릿속에서 시곗바늘이 계속 돌아가는 것처럼 수만가지 생각이 돌고 있다. 저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놓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면 지금 내 상황이 달라졌을까? 고개를 세차게 흔든다. 차라리 시계바늘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 내가 죽어버리면 시간을 정지시킬 수 있을까? 걷잡을 수 없이 내 마음은 여기저기 제멋대로 돌아간다. 

장자풍이란 으레 공허한 거요 위선이다.

장자풍(長者風)이란 덕망이 높고 많은 경험으로 세상일에 익숙한 사람의 풍채와 태도를 말한다. 그런데 장자풍이 으레 공허하고 위선이다? 조선 말기 타락하고 허약해빠진 사대부를 향해 비아냥거리는 말이건만 이것이 현대 지식인들을 향한 독설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왜일까.

진담이란 대개의 경우 욕이며 행패일세. 아첨이란 늘 거짓이니까.

취중진담이라는 말이 있다. 대부분 취중진담은 쌍욕과 행패로 얼룩진 행위다. 멀쩡한 정신에서 한번 걸러서 나오는 말은 진담이 아닌 거짓인 것이다. 결국 우리는 거짓으로 얼룩진 현실에서 술로써 암울한 진실을 성토하며 사는 것일까?

가난한 자는 슬프지만 탐욕에는 사랑이 없다. 

왜 이리도 이 말이 절절히 다가오는 것일까? 가난한 자는 슬프다. 자신이 무시당하고 천대당하는 것은 그저 서럽기만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무엇도 해줄 수 없는 것은 너무도 슬프기 때문이다. 탐욕은 나만을 생각하는 것이라 내가 무시당하고 천대당하는 것이 서럽고 슬프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처지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사랑이 없는 것이다. 

죽음을 사랑하고 죽음을 동경하고 보복의 쾌감이 넘실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이드신 어르신들이 가족들에게 영향력을 더 이상 발휘하지 못한채 박탈감을 가지게 되면 "이제는 내가 죽어야지"라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 자신의 화려했던 젊은 날을 뒤로 하고 더이상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처지를 한탄하면서 어쩌면 그들은 죽음을 사랑하고 동경하고 그렇게 말함으로써 보복의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효 사상은 사랑이라는 인간 본연의 바탕 위에서 가장 아름답게 피어야 하는 꽃인데, 사랑이 있으면 의견충돌이나 성격문제 같은 것도 얼마든지 극복이 될 테지만 사랑이 없는 곳엔 바위에 계란 치기지. 절대적으로 자기 자신만을 위한 방패가 필요.

사랑과 욕망의 차이는 이타적인 극복과 이기적인 방패일까? 사랑이 있으면 서로 다름을 극복하고 이해할 수 있지만 사랑이 없고 욕망만 있다면 자기 욕심을 지키기 위한 방패일 뿐이다. 우리는 극복하고 살 것인가 아니면 지키기만 할 것인가?

설령 어미가 바위 같은 강자요 자신은 모래알 같은 약자일지라도 자신이 거부하는 쪽이 가해자가 될 수 밖에 없다. 상대로부터 어떤 고통을 받든 피해를 받는 가해자는 거부하는 쪽이다.

바위같은 강자 앞에서 모래알 같은 약자일지라도 자신이 거부하는 쪽이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강자의 위치에서 자기욕심을 위해 약자였던 나의 귀중한 시간을 희생시키면서도, 나와는 진실된 대화를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그 사람. 그 사람에게 실망해서 뒤돌아섰을 때 모든 이들은 나를 가해자라고 손가락질했다. 누구도 그 강자로부터 내가 어떤 고통을 받았었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단지 뒤돌아서 내 갈길을 가버렸다는 이유로 그들은 나를 가해자로 만들어버렸다.

어둠이 수증기처럼 얼굴을 스쳐 지나간다.

표현이 좋아서 필사해보았다. 마음속 안 좋은 기억들이 마치 수증기처럼 내 얼굴을 스쳐 지나간다. 마치 겨울철 칼바람이 내 살갗을 에이는 것처럼 말이다.

절망의 정열, 스스로 위기에다 몸을 내던지고자 하는 감정과 제어하려는 의지와의 싸움, 그 날카로움, 오뇌, 갈등을 찾아볼 수 없다.

모든 것을 자포자기하면 그렇게 되는 것일까? 절망의 정열, 스스로 위기에 몸을 내던지려는 감정과 제어하려는 의지와의 싸움, 오뇌, 갈등... 내가 자포자기한 적이 언제였던가를 기억해본다. 절망의 정열은 없었던 듯하다. 다만 스스로를 해하려는 감정과 그것을 제어하려는 이성과 싸움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 갈등 속에서 과거와 현재에 대한 오뇌(뉘우쳐 한탄하고 번뇌함)로 괴로워했다. 

잘난 말 몇 마디 하는 것, 그건 아무짝에도 못쓴다. 바보 시늉, 미친 시늉 뮛이든 빠져나오는 게 젤이제. 싸움이란 그래야 이기는 법이거든. 감정 때문에 힘 빼는 것, 그것같이 어리석은 일은 없다, 앞으로 살아가자믄. 

이 말이 사정없이 내 마음의 등짝을 후려친다. 한동안 아무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부끄럽기보다 위로가 된 말이었다. 바보가 되든, 천하에 못쓸 놈이 되던, 잘난 말 몇 마디를 불평처럼 늘어놓느니 그 상황을 빠져나와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는 것이 제일 현명한 처사이다. 그런 것을... 나는 왜 그리도 자책을 했던가.

체면만 차리면서 굶어 죽을 순 없다는 생각들이었다. 한데도 신분문제에서만은 권위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에서가 아닌 습관, 상것들을 하시하고 횡포하게 다루는 습관을 버리려 하지는 않는다.
양반의 자존심은 버리면서 습관만은 쉽게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이러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아직도 양반의 후손임을 강조하고 그 습관을 그대로 답습하는 분들이 많다. 특히 엘리트 계층이라고 불리는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중에서 이 습관이 몸에 밴 분들이 많다. 내가 철이 들기 시작한 때는 그런 사람들을 알아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별난 것도 없고 별나게 살아서도 안될 것이며 두드러지게 보여도 안 될 것이다. 세상은 살아가기 힘든 곳이지만 쉽게 살 수 없는 곳도 아닐 것이다. 뜨겁게 살 수 없다 하여 차갑게 살아야 한다는 법도 없는 것이다. 사랑할 수 없다고 미움으로 살아도 아니 될 것이다. 그러면은 지아비도 될 수 있는 것이요 아이 아비도 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스스로에게 겸허하고자 했다. 다른 이와 비교를 하지 않으며 살고자 했다. 나 역시 별난 놈이 아니라고 스스로 두드러지게 보이기도 싶지 않았다. 아마도 그것이 내가 머나먼 타국땅에서 한국사람들을 의도적으로 멀리했던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타국땅에서도 익숙한 것을 찾아 쉽게 살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식으로 나자신과 타협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비록 똑똑하고 사람관계에 현명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스스로 자책하며 살아가야하는 법도 없는 것이다. 내자신과 주변 상황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모든 것을 분노와 미움으로 살아도 안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먹어가는 나이에 어느 정도 맞춰주는 인격을 가질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어떤 일인 식자는 미친 군중이라 했다.
군중은 미쳤을는지 모르지만 일본의 위정자는 지극히 예리하고 정확한 판단을 한 것.
배고픈 이리들의 사나운 이빨을 피하기 위해 그들은 양을 내던진 것이다.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 이후 일본에서는 조선인들과 사회주의자들이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약을 넣었다는 유언비어가 퍼지기 시작했고 이를 빌미로 일본인들은 재일 조선인들을 살육하기 시작한다. 일본 경찰이 이를 방조 또는 방관하면서 조선인들의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이는 당시 경제공황과 더불어 자연재난으로 성난 민심이 반정부 폭동으로 이어질 것이라 우려한 일본 위정자들에 의해 치밀하게 이루어졌다. 6천여 명이 넘는 조선인들이 일본 군중에 의해 학살되었다. 일본 위정자들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힘없는 자들의 삶과 목숨 따위는 벌레만도 못한 것으로 취급해 버린 것이다. 1992년 4월 로스앤젤레스 흑인 폭동 사건 당시에도 흑인 폭동이 한인타운으로 번지면서 수많은 한인들이 약탈과 방화로 피해를 입었다. 미 경찰당국은 며칠간 방관하면서 상황을 관망하다가 어느 정도 사태가 진정된 후에야 통제를 하기 시작했다. 한인타운 약탈로 흑인폭동 혼란의 물줄기를 돌려놓고 사태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린 그들의 계산은 매우 치밀했던 것이다. 

희극이 비극보다 어려우며 더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웃프다는 웃기면서 슬프다는 현대 우리말 표현이다. 겉으로는 웃지만 그 웃는 얼굴 이면에는 서글픈 진실이 담겨있다는 뜻일까. 웃으면서 진정 웃지 못하는 우리의 서글픈 현실. 그런 면에서 희극은 비극보다 더 어려우며 더 많은 인생의 진실을 함축하고 있다. 

깡그리 매도하고 경멸하고 증오하며 편견과 옹졸과 억지까지 동원하여 지식인들을 공격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는 심정은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그러는 것은 물론 아니다. 엄청난 힘, 저돌적인 돌진이 제아무리 격렬하다 하더라도 결과는 공중으로 붕하니 떠버리고 마는 엄연한 역학은 느낌보다 훨씬 앞서 나타나는 현실이었으니. 자해할밖에 강정의 출구가 없는 것이다.

공부 좀 했다고, 돈 좀 있다고, 거만 떠는 지식인들과 기득권층을 입에 침 튀겨가며 비판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그 계층에 끼지못한 내 자신을 자학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내자신이 초라해지고 견딜 수 없어 스스로 마음에 자해를 가하곤 했다. 그것을 극복하기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모르면서 아는 척하기를 좋아했고 지식이 많은 여자를 존경하면서 자신도 애써 그 대열에 끼어둘려는 경향이 짙었다.

그랬었구나. 20대 나의 모습은 그랬었다. 모르면서 아는 척하고 잘난 척하기를 좋아했으며 학벌과 인품은 정비례한다는 관념, 그리고 나 역시 애써서 그 대열에 끼어들려는 성향이 있었다. 오래가지 않아 그 관념은 산산조각이 나면서 내 인생 첫 번째 전환점이 찾아왔다. 

아편과도 같은 망실의 쾌감

허영에 차있었던 내 모습이 산산조각 나버리고 깊은 곳에 내재되었던 관념이 분노로 변했던 때가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마셨다. 그 누구에게 속마음 털어놓기 쉽지 않아 홀로 술 마시는 시간이 늘었다. 그렇게 술 먹고 정신을 잃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했다. 술먹고 내 의식을 잃으면서 나는 망실의 쾌감을 느꼈다. 마치 마약 중독자처럼...

마음이 눈에 띄는 순간마다 말할 수 없는 혐오감은 자신의 감정을 고갈시키는 것이었으며, 편협하게 하는 것이었으며, 수술대 앞에서 메스를 들고 절개할 부위를 내려다볼 때처럼 그렇게 냉엄하게 하는 것이었으며...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지고 다른 이들의 나를 향한 말과 태도에서 그 속마음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말할 수 없는 혐오감이 내 목을 옥죄이기 시작했다. 나는 마치 관심법觀心法을 가진 궁예가 되어 항상 타인을 의심하고 용서하지 않는 편협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그런 내자신이 두려워 사람들이 멀리하고 시작했다. 

죽음을 맞이할 때야말로 어떤 형태로든 숨김없는 한 인간의 결산이 나온다고들 하지.

내가 죽음을 맞이할 때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인가? 삶에 대한 끊임없는 집착과 의지를 보일까? 아니 오히려 현실을 받아 들이고 순종하며 조용히 마무리할 시간을 준비할까? 나에게 삶에 대한 집착과 의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자학할 것은 반성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내 존재가 사라지는 것에 두려움과 슬픔을 보이는 가족들에게는 무척 미안할 것 같다. 지나가버린 과거에 대한 후회와 나와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도 조금 들 것 같다. 어쩌면 죽음을 생각하는 그때가 내 삶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는 순간이 아닐까.

덕은 없어도 세상에 해는 끼치지 않지. 

남들에게 덕을 쌓는 인생도 나쁘진 않다. 하지만 다른 사람 인생에 해악은 끼치지 않는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 내 자신 체면과 평판에 신경쓰며 사는 것 보다 내 스스로 떳떳하게 사는 것이 더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자신의 잘못이기 때문에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을 홍이는 깨달은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준 마음의 상처는 전적으로 내 잘못이다. 이는 내 기억 속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 대가를 이미 치렀고 앞으로도 치러야 할 것이다. 이젠 지워내려 하지 않고 마음속 깊이 간직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때이다.

어떤 경우에도 감정을 위장한 온유함이 유지되는 것

자신의 체신과 권위를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이를 위장한 온유함을 유지하려 애쓴다. 그런 위장된 온유함 앞에서 나는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좋을까. 냉정함과 침착함이란 명분아래 침묵을 유지해야 할까? 오가는 말을 새김질하며 상대방에 대한 판단의 정확성에 접근하려고 노력해야할까? 내심 속으로는 아직도 감정에 휘둘리는 내 자신을 이렇게 방어해야 하는가. 스스로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져본다.


권을 거듭할수록 소설 토지는 개개인의 마음과 우리 사회의 적나라한 면을 보여주면서 나에게 통렬한 메시지를 던져주곤 한다. 1부, 2부와는 다르게 3부에서는 소위 말하는 신여성新女性으로 근대를 살아가야 했던 우리나라 여성들의 삶을 작가 박경리의 시선으로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 같다. 그 시대를 살아간 우리 할머니 세대를 이해하지 못한 우리의 모습에서 미안함과 부끄러운 마음이 교차한다. 

3부를 읽어나가며 당시 어두웠던 사회상이 나의 어두웠던 기억들과 교차되어 책장 넘기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절반에 다다른 토지라는 소설 속 여정에서 나는 과거 내 자신의 싸움을 회고하며 감정을 풀어낸다. 과거의 상처를 덧칠하면서 잊지못할 교훈으로 되새김하여 현재에 최선을 다하자고 오늘도 재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