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리낸 공원 (Cullinan Park)
10월 초 일요일 아침, 가족을 데리고 집에서 차로 약 20여분 거리에 있는 컬리낸 공원(Cullinan Park)을 다녀왔다. 가을의 선선한 공기를 느끼고 싶은 마음에 집 주변의 괜찮은 공원을 검색하던 중 발견한 공원이었다. 텍사스 슈거랜드 (Sugar Land) 시 웹사이트 (www.sugarlandtx.gov/facilities/facility/details/Cullinan-Park-64)에 따르면 컬리낸 공원은 휴스턴에서 제법 큰 자연공원들 중의 하나이며 화이트 호수 (White Lake)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Observatio Tower)와 더불어 약 3.6 마일에 이르는 오솔길을 가지고 있다. 야생 새들의 거주지가 조성되어 있어 새를 관찰하는 취미를 가진 이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가 되고 있다고 한다.
하이웨이 6 (Highway 6)를 타고 가다가 공원 입구를 발견하지 못하고 부근에서 약 10여분을 돈 끝에 결국 공원입구에 들어섰다. 하이웨이 6번을 타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오는 길이라면 공원 표시판과 더불어 우측에 들어가는 길을 쉽게 발견할 터인데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이어서 그런지 표시판을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공원에서 들어서니 주차장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아 빈 주차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운좋게 공원을 나가는 차량 한 대가 있어 주차장 내에서 차를 주차시킬 수 있었다. 만일 공간을 찾지 못했다면 길가에 세워야 했을 터.
주차장 가까운 곳에 화이트 호수가 자리잡고 있는데 상당한 규모의 연꽃잎들 (Lotus)이 호숫가에 있는 것을 보고 조금 놀랐다. 대부분 누렇게 시든 연꽃잎들이었는데 만일 6 - 8월 여름 아침에 왔다면 이슬에 맺힌 연꽃과 잎 방울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된다면 좋은 시간을 잡아 성능 좋은 카메라 들고 와서 예술 사진 한번 찍어보고 픈 욕망이 잠시 들었다.
화이트 호숫가에 세워진 보드워크(boardwalk)를 따라가다 보면 호숫가 정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 (Observation Tower)가 나온다. 아이들과 같이 올라가서 호숫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전망대 내에 있는 판자 나무 표면에 다녀간 사람들의 재미있는 낙서를 보는 것도 볼꺼리중 하나였다. 예쁘게 그려놓은 얼굴, 가족 이름과 건강을 기원하는 메시지, 누군가는 다녀갔다는 흔적을 보면서 다른 시간에 있었던 사람들의 마음이 전망대 안에서 군중을 이루는 것 같았다.
보드워크를 따라서 그 끝까지 가보니 조그마한 벤치가 양쪽 끝에 위치하고 있었다. 평상시 같으면 아이들과 같이 앉아 호숫가의 고요함을 감상했겠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는 벤치에 앉아 자연을 즐기는 여유마져 뺏아가 버렸다. 아이들에게 주변의 어느 것도 만지지 말고 풍경만 감상하라는 것은 너무 무리한 부탁이었을까? 아이들이 벌써부터 지루해한다. 그저 고요한 호숫가의 분위기 속에 이렇게 보드워크를 걷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호숫가에 있는 보드워크 산책을 끝내고 공원내 숲 속 오솔길 산책을 할까 했는데 아이들이 벌써 피곤하다고 칭얼댄다. 큰 딸아이가 독감 주사를 맞은 후 이틀 전 몸살기를 겪었던 것을 고려하여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차 안에서 쉬도록 하고 나 홀로 오솔길 산책에 나섰다. 일단 안내판에 나온 지도를 보니 (www.cullinanparkconservancy.org/maps)를 보니 0.8마일 정도 걸어가면 커다란 피칸 나무 (large pecan tree)가 있다 하여 그 곳까지 가보기로 했다.
Large Pecan Tree를 보기 위해서는 일단 Oyster Creek Loop Trail을 따라 가다 Piney trail를 방향을 틀어야 한다. 오래된 나무들로 우거진 속에 크게 나있는 오솔길을 걷기 시작했다. 며칠 전 비가 와서 그런지 땅이 약간 젖은 느낌이 있었지만 떨어진 낙엽들 때문에 질퍽거리지는 않았다. 그늘 아래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니 습한 날씨에도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인적 드문 오솔길을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갑자기 아주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서 산행을 하던 기억이 났다. 절 담벼락을 돌아 조그만 오솔길을 아버지는 뒷짐을 지시고 싸목싸목 걸어가셨고 어린 나는 어쩔 때는 앞에서 깡충깡충 뛰다가도 뒤에서 아버지의 뒷짐 진 손을 보며 천천히 걷기도 했었다. 그때 아버지의 모습이 되어 걷고 있는 나에게는 잠시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이 지어졌다. 그래... 아버지도 그때 이런 기분이셨을까...
그렇게 회상에 젖어 걷다 보니 Oyster Creek Trail과 Piney Trail이 나누어지는 갈림길에 들어섰다. 워낙 울창한 숲속에서 여러 가지 갈래길들이 있는지라 방문객들이 헷갈리지 않도록 오솔 길가에 있는 나무에 페인트로 색깔 표시를 해놓았다. 예를 들면 Pine Trail를 따라서 가면 길가에 있는 나무에 파란 페인트가 칠해져 있어 내가 지도에 나와있는 오솔길을 잘 따라서 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Piney trail을 따라서 걸어가는데 인적이 전혀 없었다. 무성하게 우거진 오래된 나무들 사이로 난 조그만 오솔길은 마치 한국에서 등산객들이 올라가는 산행길 마냥 아기자기했다. 아버지 또는 장인어른이 오시면 참 좋아하실만한 길의 모습이다.
가끔씩 내 얼굴 앞을 스쳐지나가는 나비들과 귓가를 울리는 새 지저귀는 소리는 오래된 한국에서의 산행길 추억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 주었다. 그때 느꼈던 나만을 위한 고요함이 다시금 새롭게 느껴졌다.
생각보다 한참을 걸어 Large Pecan Tree에 도착했다. 숲 속 깊숙이 숨어있는 전설의 나무괴물 모습마냥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데 밤에 오면 조금 으시시하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가까이 들여다보니 생각보다 큰 나무였다.
옆에 있는 안내 표지판을 읽어보니 이 pecan tree는 보통 75 - 100 feet 이상 자라며 주로 큰 왕관모양으로 가지를 뻗쳐나간다고 한다. 이 곳 Pecan tree는 2018년 6월을 기준으로 텍사스 내에서 23 번째 큰 pecan tree이며 100 feet 높이에 82 feet에 걸쳐 가지가 처져있고 그 둘레는 183 인치라고 한다. 나무 큰 줄기 가운데 큰 구멍이 나있었는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서 들어간 고목 구멍의 입구를 연상케 했다. 큰 딸아이를 데려왔으면 앨리스 이야기를 해주며 구멍에 들어가고 싶냐고 겁을 주었을 텐데 라는 장난끼 어린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에 문득 어린 나를 데리고 장난을 종종 치시던 아버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참 오늘은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는구나.
Large pecan tree가 우거진 숲을 나오니 노란 꽃망울이 뒤덮인 탁트인 벌판이 나왔다. 오래된 어둠 터널을 지나와 고향에 돌아온 한 남자에게 노란 리본을 여기저기 달아 환영해주는 마냥 숲 속의 오솔길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었다. 어쩌면 난 잠시 어린 시절 추억의 오솔길을 걸으며 과거의 기억들에게 둘러싸였다가 잘 가라는 노란 손수건의 메시지를 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간만의 가족 없는 혼자만의 산책은.. 퍽 좋았다. 종종 시간 날 때 이런 기회를 많이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