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Far from the tree
오랜만에 아이들을 데리고 극장에 갔다. 디즈니 (Disney)에서 만든 "엘칸도(Elcanto)"라는 영화를 보기 위해서였다. 딸아이가 같은 반에 있는 친구들은 다 보았다면서 자신도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싶다고 한동안 졸라댔다. 생각해보니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 이후 약 2년 이상 극장을 가지 못했다. 둘째 아이는 극장에서 영화를 본 경험이 거의 없다. 결국 사람들이 붐비지 않을 시간인 토요일 오전에 아이들을 데리고 영화관람을 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가본 극장은 낯설었다. 사람들은 북적거리지 않는 고요하고 한적한 느낌을 준다. 배정된 좌석에 앉기전 미리 가지고 간 소독제(clorox wipes)를 이용해서 좌석 구석구석을 닦았다. 요즘 극장은 거의 누워서 시청이 가능할 수 있도록 마치 비행기 비지니스 클래스에 있을 법한 편안한 좌석을 제공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영화 예고편 보는 것을 즐긴다. 새로운 영화를 향한 기대와 흥미를 유발시켜주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나를 닮아서 그런지 너무나도 많은 예고편이 나온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예고편이 끝나고 디즈니 로고가 스크린에 나오면서 영화가 시작됨을 알린다.
최근 몇년 간 나오는 디즈니 영화에는 5~7분 정도의 단편 2D 애니메이션이 영화 시작전 제공된다. 엘칸도 영화가 시작되기 소개된 Far from the Tree"라는 단편 애니메이션은 "미국 너구리 (Raccoon) 어미와 새끼가 겪는 어느 날을 묘사한다. 이 애니메이션은 동물들의 세계를 표현하느라 자연의 소리, 오래된 음악, 그리고 동물의 소리만을 담고 있으며 그 어떤 인위적인 대사가 나오지 않는다.
인적이 없는 해변가, 어미 너구리가 냄새를 맡으며 조심스럽게 수풀속에서 모래사장으로 나온다. 어미 너구리 왼쪽 눈가에는 큰 흉터가 있다. 아마도 지난 날 삶의 고된 흔적을 보여주는 듯 하다. 그 흔적 만큼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어미 뒤에는 태어나서 처음 세상에 나온듯한 아기 너구리가 따라나온다. 어린 너구리의 청명한 눈에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을법한 놀이대상이다. 수풀속에서 뛰쳐나오려는 아기너구리를 어미는 신경질적으로 통제한다. 어미는 아기에게 안전한 바위틈새에 머무를 것을 신신당부하며 먹을 것을 찾아나서지만 아기는 그 자리에서 가만 있지 못한다. 몇차례 실랑이 끝에 아기 너구리는 몰래 해변가로 빠져나가고 새들이 활짝 날아오르는 아름다운 풍경 쪽으로 신나게 달리다가 늑대를 마주치게 된다. 늑대의 발톱에 얼굴이 상처가 나게 된 아기 너구리는 겁에 질려 몸이 얼어버린 순간 어미 너구리가 나타나 아기를 구해 높은 나무 꼭대기로 피신하게 된다. 화가 잔뜩 난 어미 너구리는 아기에게 왜 말을 듣지 않느냐며 야단을 치다가 아기 얼굴에 난 상처를 보고 그만 할 말을 잊어버리며 슬픔에 잠기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기너구리는 어미의 처지가 되어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그 해변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비슷하면서도 또다른 상황이 전개되는데...
그 순간, 그 장면을 보며 나는 가슴 깊은 한 구석이 갑자기 먹먹해져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내 어릴 적 나에게 곧잘 야단을 치시던 부모님 얼굴이 생각났다. 그 야단에는 부모님 자신 삶 속의 고단함과 상처가 묻어 있었다는 것을 그당시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부모님의 나이가 되어 천진만만한 내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내 삶 역시 부모님처럼 녹록치 않았다. 내 나름 상처를 가슴 속에 간직하고 살면서 내 아이에게는 그 상처가 반복되게 하지 않으리라는 결심을 하던 시절이었다. 아이들의 청명한 눈과 순수한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어린 시절 내가 가졌던 순수함이 상처로 얼룩지게 된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움도, 슬픔도 아닌 애잔한 감정이 잔잔한 물결이 되어 내 가슴 속에 스며들었다.
부모님이 받은 상처를 내가 100% 이해한다고 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 상처를 자식들에게 내려주지 않겠다는 강렬한 욕구는 당시 부모님에게 크게 야단을 맞았던 기억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자신이 원한만큼 배우지 못했다는 상처, 남들만큼 유복하게 가족을 부양하지 못했다는 상처, 자신 처지때문에 자식들이 가까운 이들로부터 무시받았다는 상처... 그 모든 상처들이 나에게는 야단으로, 히스테리컬한 경계와 집착으로, 그리고 자식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흐느끼는 음성으로 표현되었으리라.
그리고, 이제 나는 부모님의 처지가 되었다. 가끔씩 나만의 상처를 어루만지다가도 아직도 덧나있는 상처때문에 아이들을 다그치기도, 야단을 치기 한다. 나는 잘 하고 있는 것일까? 이 아이들을 큰 상처없이 세상을 배워나가도록 할 수 있을까? 부모의 입장에서 수없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지만 어릴적 나에게 야단을 치던 부모님 표정 깊숙한 곳을 한동안 기억해보지 못했다.
"Far from the Tree"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닌 아이들과 함께온 부모를 위한 것이었다. 엘칸도 영화가 시작되었음에도 그 여운을 한동안 잊지 못했다. 내 인생 가슴 속에 깊이 각인된 최고의 애니메이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