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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보카 네그라 캐니언: Boca Negra Canyon

Barram 2021. 6. 7. 13:52

앨버커키 서쪽 외곽에 있는 보카 네그라 캐니언(Boca Negra Cannyon)라는 곳을 찾았다. 이 곳은 한적한 주택가 내에 있는 조그마한 바위 언덕이다. 이 바위 언덕에는 메사 포인트 트레일 (Mesa Point Trail)이라는 곳을 중심으로 고대 인디언들은 새겨놓은 암석화 (Petroglyphs)로 유명한 곳이다.

보카 네그라 캐니언(Boca Negra Cannyon) 정경

평일에는 1달러, 주말에는 2달러의 주차비를 내고 공원에 입장할 수 있는데 주차비를 따로 받는 사람은 없고 본인이 직접 돈을 수거함에 넣고 입장하는 듯 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바위언덕을 바라보니 그다지 높지 않은 곳이라 오르는데는 큰 문제가 없을 듯 싶었다. 물론 이것이 착각이었다는 생각을 나중에 깨달았지만 말이다.

바위산을 아래에서 바라본 전경

메사 포인트 트레일 표지판을 따라 바위 언덕을 올라가다 보면 여기저기 암석화이 새겨진 바위들이 눈에 띈다. 아이들은 누가 이 곳에 낙서를 해놓았나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킥킥 거리다가도 이 암석화는 무엇일까 하며 골똘히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기다란 꼬리를 가진 동물이 눈깔 사탕을 가지고 먹는 모습이라는 첫째의 감상평

여기저기 새겨진 암석화에 아이들은 자신만의 상상을 양념삼아 여러가지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건 꼬리가 긴 개 한마리가 눈깔사탕을 들고 다른 개들 앞에서 뽐내는 게야', '이건 공룡이 커다란 새 대가리를 보고 놀라는 모습이야' 등등... 아이들은 보물 찾기를 하듯 여기저기 바위를 둘러보며 나름의 감상평을 쏟아낸다.

공룡이 거대한 새 대가리를 보고 놀래는 모습 이라는 둘째의 감상평

가끔씩 이해할 수 없는 형상을 가진 암석화도 있다. 아이들의 상상력이 한계에 다다르면 아빠와 엄마에게 질문 공세가 이어진다. 나는 이렇게 답변한다. 우리 로즈웰에서 UFO 외계인 박물관에 갔었잖아.. 아마 이것은 외계인의 작품일지도... 라고 농담삼아 이야기한다. 아내를 그런 나에게 눈을 흘기면서 쓸데 없는 이야기 하지 마라고 핀잔을 준다. 

가끔식 알수 없는 형상을 가진 암벽화도 있었다.

암석화는 리오 그란데 계곡 (Rio Grande valley)에 거주하고 있던 고대 인디언들이 그들 나름대로 문화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는 증거를 보여준다. 당시 고대 인디언들이 암석화를 통해 표현했던 신화 또는 애니미즘 (영혼이나 정신을 뜻하는 라틴어 'anima'에 기원을 두고 있다)은 현대에 살고 있는 나바호(Navajo)나 아파치(Apache)와 같은 토착 부족민들에게 아직까지 신성한 존재로 자리 잡고 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언급된 애니미즘은 모든 장소, 동물, 식물, 자연 현상이 의식과 감정을 지니고 있으며 인간과 직접 소통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러므로 애니미스트는 언덕에 있는 큰 바위들 하나하나가 욕망과 필요를 지니고 있다고 믿었다. 당시 고대 인디언들은 바위를 상대로 말을 걸거나 위로하거나 위협을 가하는 표시로서 이런 암석화를 만들었다는 추측을 해볼 수도 있겠다.

당시 인디언 부족 사람들을 묘사한듯한 암석화

보카 네그라 캐니언의 암석화에서 관찰된 이미지들은 미국 남서부 인디언 부족들이 당시 행하였던 의식에도 반영되었다. 이러한 이미지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학설이 분분하지만 오래된 시간과 인디언 문화 쇠퇴와 더불어 현재 그 의미를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다.

열쇠 모양의 암석화

약 400 ~ 500여년 전 고대 푸에블로인들 (Pueblo)은 이 곳에서 모래암석(사암)으로 만든 망치와 끌을 이용하여 현무암 바위에 모양을 새겼다. 거친 사막모래바람에 풍화된 석회암의 얇은 표면을 벗겨내면 보다 밝은 빛깔을 보였는데 바로 이 성질을 이용해 푸에블로인들은 여러가지 종류의 암석화를 만들어낸 것 같다. 어떤 암석화는 새, 동물 등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묘사해 알아보기 쉬운 반면 아직까지 이해할 수 없는 기하학적 모양을 가진 것도 있다.

당시 종교의식을 묘사하는 듯한 암석화

바위언덕을 조금씩 올라가다보니 경사가 가파라진다. 돌덩어리들 사이로 나있는 조그마한 길로 올라가는 길은 혼자라면 큰 문제가 되진 않겠지만 9살과 4살 아이를 데리고 올라가기에는 쉽지 않았다. 아이들은 여기저기 발을 디디며 재미있어 했지만 그것을 보는 부모의 눈은 행여나 넘어질까, 낙상 사고가 날까 하는 걱정이 가득해진다.

아내는 바위 언덕 올라가는 것을 중도에 포기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계속 올라가기를 고집한다. 결국 나 혼자서 아이들을 데리고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여기저기 울퉁불퉁한 바위들 사이로 아이 둘을 데리고 혼자 올라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높지 않은 바위 언덕이라 쉽게 보았던 것이 화근이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계속 올라간 것이 후회가 되었지만 결국 정상 부근까지 올라갔다.

아이들과 함께 바위언덕을 올라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바위 언덕 중턱에서 바라본 주차장은 황량하다. 아이들을 데리고 조심조심 바위언덕을 내려가는데 몇몇 사람들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간 것이 매우 용감하다고 핀잔아닌 핀잔 같은 칭찬을 준다. 

바위 언덕 위에서 바라본 주차장

자신의 상상속에서 암석화를 감상하고 바위 언덕 등반을 성공적으로 마친 아이들은 재잘재잘 자신의 느낌을 공유하며 차에 오른다. 난 아내에게 괜히 위험한 시도를 했다며 한 잔소리를 들으면서 주차장을 서서히 빠져나왔다.

아이들과 바위 언덕을 오르는 것은 조금 위험하고 스릴이 있었지만 암석화를 같이 관찰한 것은 좋은 경험이었다. 대부분의 암석화는 바위 언덕을 올라가는 길목에 있으니 바위 언덕 정상까지 올라갈 필요는 없을 듯 하다. 혹시라도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이 곳을 방문한다면 바위 언덕 입구 길가에서 암석화를 감상하고 바위 언덕까지는 올라갈 필요는 없을 듯하다. 물론 개인 상황에 따라 그 선택은 달라지겠지만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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