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ram's Life
덴버 항공 박물관: Wings Over the Rockies Air & Space Museum 본문
중학교 2학년 때 나는 특수 목적고인 공군기술고등학교 (2006년 공군항공과학고등학교로 개칭) 입학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다. 당시 모든 학비 및 경비가 무료이고, 소정의 용돈을 받을 수 있으며, 졸업 후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 수 있다는 장점에 마음이 끌렸던 듯 싶다. 또한 어린 시절 유니폼 로망에 빠져든 것도 부인할 수 없겠다. 물론 그 생각은 펄펄 뛰시는 부모님의 반대로 허무하게 끝났지만 항공에 대한 내 관심이 함께 꺼져버린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나는 용돈을 모아 월간 항공이라는 잡지를 매달 구입했다. 당시 잡지치곤 상당히 비싼 간행물이었는데 최신형 전투기에 대한 사양을 읽어보고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내가 아는 지식을 이야기하곤 했다. 당시 F-35의 프로토타입에 관련된 기사를 보고 흔치 않았던 스텔스 기술에 대해 읽어보던 기억이 난다.
공군사관학교는 조건만 된다면 입학하고픈 로망이었다. 내 신체적 조건이 부족하여 그 꿈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안 것이 중학교 2학년때였으니 아마도 그래서 공군기술고등학교 입학에 관심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또다른 옵션이었던 항공대학교는 당시 이과가 아닌 문과를 선택했던 나에게 많은 선택지를 주지 못했다. 아마도 항공경영학과 정도가 유일한 선택지였던 듯 싶다.
결국 고등학교 3학년때 현실적인 결정을 하고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인생길을 걸으면서 로망에 가까운 꿈은 잊혀져갔다. 하지만 아직도 항공 박물관이나 행사가 내 마음을 잡아당기는 것을 보면 그 로망이 내마음에서 사라져버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록키산맥을 가로지는 날개라는 이름이 붙은, 덴버 항공 박물관 (Wing Over the Rockies Air & Space Museum)을 찾은 것은 아이들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나의 옛 로망을 기억하고픈 욕망의 분출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날 콜로라도 록키 산맥 방문이 틀어진 후 덴버로 돌아오는 길에 항공 박물관 방문을 인터넷으로 예약했다.
덴버 항공 박물관: Wings Over the Rockies Air & Space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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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over fifty iconic aircraft and the most realistic flight simulators in Colorado, Wings Over the Rockies Air & Space Museum has something for everyone.
wingsmuseum.org
항공박물관은 덴버 다운타운에서 멀지 않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박물관 입구에는 거대한 B-52 Stratofortres가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이것은 모형이 아니라 실제 폭격기를 박물관 건물 앞에 전시해놓은 것이다. B-52는 1950년부터 1990년대 걸프전때까지 운용된 미국에서 가장 장수한 폭격기 기종이다. 아들 녀석이 박물관으로 들어가기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비행기를 연신 외쳐댄다.
코로바 바이러스로 인해 시간대 별로 입장객 수에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예약 시간대에 맞춰 입장해야 했다. 생각보다 박물관 내부가 크고 넓어서 많은 비행기들과 모형물들이 전시되어있었다.

입구에 들어서면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군 조종사들이 출격전 브리핑하는 광경을 묘사한 조각상이 있다. 조종사 세명의 모습이 각각 다른데, 한명은 중요한 임무를 수첩에 적는 모습, 다른 한 명은 전사한 동료를 생각하며 슬퍼하는 모습,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있는 조종사는 슬퍼하는 동료들을 위로하는 모습이다. 이 조각상은 제2차 세계대전중 전사한 88,000명의 공군 장병을 기억하기 위해 제작되었다고 한다. 88,000명 이상의 공군이 희생되었다는 말에 생각보다 그 숫자가 많아 조금 놀랐다. 세계 대전은 그렇게 많은 젊은이의 목숨을 앗아갔구나. 그들은 무엇을 위해 희생되었을까? 조국의 승리, 평화, 명예? 알듯 말듯한 그 이유를 떠나 그 희생을 감수할 용기를 가지고 참전했던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박물관은 우주선 개발 역사를 안내하는 관람관으로 시작하는데 주로 아폴로 우주선 개발 및 발사에 대해 소개놓은 글이 많았다. 아이들은 이 곳을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바로 비행기가 전시되었는 곳으로 달려간다.
나역시도 한때 잡지에서 보았던 전투기 기종을 실제로 본다는 생각에 들떠 아이들을 쫓아간다. 나이를 먹었어도 옛적 로망에 젖어 나역시 아이가 되는 것 같다.

첫번째로 본 비행기는 Ball-Bartoe Jetwing라는 기종으로 1970년대 콜로라도주에서 개발, 제조 및 시험비행이 이루어진 기종이다. 신형 전투기 개발에 필요한 요소를 파악하기 위해 이용된 테스트 기종이며 짧은 착륙 및 이륙거리로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1986년 톰 크루즈 (Tom Cruise)가 열연한 '탑건(Top Gun)'에서 나오는 이 전투기는 1970~1990년대 미 해군의 4세대 주력 전투기였다. 1970년대 베트남 전쟁 당시 소비에트 연방의 미그 23기에 대항할 수 있는 함재기로 개발되었다. 2006년 F/A-18 수퍼호넷 (Super Hornet)으로 대체되면서 퇴역했다. 오래전 개발된 전투기임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초월하는 세련된 디자인으로 많은 이의 시선을 사로 잡았던 전투기다. 어렸을때 문구사에 전시된 F-14 프라모델을 보며 한참동안 서있었던 기억이 난다. 비록 돈이 없어 사지는 못했지만... 이룰 수 없는 욕심에 눈이 멀어 그렇게 문구점에서 시간을 보냈고 결국 문구점 주인에게 장사 방해말라며 야단맞았던 기억이 난다.

EA-6B 프로울러 (Prowler)는 전자전에 대비한 각종 전자장비를 장착한 미해군 공격기이다. 총 4명의 승무원이 탑승하며 적의 전자전 위협에 대응하고 적기를 상대로 전파 방해를 하면서 아군 공격기, 함선 및 지상군을 지원하는데 쓰인다.

앞서 언급했던 F-14 톰캣이 미 해군 함재기로 결정되기전 함재기 후보로 올랐던 FB-111A이다. 이 전투기는 공중전에 뛰어난 성능을 보였으나 기체가 너무 커서 항공모함 이착륙에 부적격하는 판정을 받은 후 주로 미공군에서 운용되었다고 한다.

B-1A 랜서(Lancer)는 1970년대 핵무장 폭격기로 개발되었으며 오직 4대만이 생산된 후 1977년 카터 대통령(President Carter)에 의해 생산이 취소된 기종이다. 하지만 그 뒤 B-1B 랜서가 개발되어 현재까지 운용중이다. '죽음의 백조'라고도 불리는 이 폭격기는 북한과 미국간 핵미사일 긴장이 치닫던 2017년, 미국이 북한 동해의 국제공역을 비행하며 무력시위를 전개한 기종이기도 하다.

196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약 40여년 동안 미 해군, 해병대, 공군에 의해 운용된 F-4 팬텀 전투기 역시 이 곳에 있다. 상당히 큰 덩치에 압도적인 탑재량과 기동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는 전폭기 역할을 했다. 1970년대 월남전 참전의 댓가로 한국에 도입되었다. 한국에서는 2021년 6월 현재까지 운용 중이며 주로 공대지 공격 및 근접항공지원 임무에 투입된다. 2024년에 전원 퇴역할 예정이다.
중학교 다닐때 F-4 팬텀 기체가 상당히 멋져 보였다. 없는 용돈 쥐어짜서 프라모델 모형을 구입하여 만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F-105 썬더치프 (Thunderchief)는 한국전쟁이후 개발된 전폭기로서 1950년대 후반부터 생산되었다. 불편한 정비와 더불어 공격과 기동성이 떨어지는 단점으로 F-4 팬텀이 개발된 후 짧은 시간 이용되다가 단종되었다. 베트남전에서 북베트남 군의 지대공미사일에 의해 가장 많이 격추된 전투기이기도 하다 (전체 F-105기종중 48%인 382대가 격추당했다).

F-100 수퍼 세이버 (Super Sabre) 전폭기는 세계 최초의 초음속 전투기로 한국전쟁을 계기로 개발되었다. 한국전 발발 직후 생각보다 성능이 우수했던 소련의 MiG-15 전투기를 상대하고자 허겁지겁 개발한 전투기인데 주로 공중전 전용으로 개발되었다고 한다. 이후 전폭기로 개량이 이루어지면서 동맹국들에게 대량 공급이 되었으나 탑재할 수 있는 폭탄 중량이 많지 않아 F-4 팬텀 개발 이후 1970년대 퇴역된다.

A-7D 콜세어 II 공격기는 미항공모함 함재기로 이용되었으며 1960년 미해군에 배치된 후 베트남 전쟁에 투입되었다. 항공모함에서 출격하여 대지상 공격 및 지상군 지원 업무를 주로 맡았다고 한다. 1970년대 다목적 전폭기인 F-14 톰캣으로 대체되면서 1990년 초반 퇴역했다. 어렸을때 TV에서 보았던 일본 애니메이션 '에이리어 88: 지옥의 외인부대'에서 이 전투기가 나왔던 것이 기억난다.

F-104 스타파이터 (Starfighter)는 1950년대 미국이 국지 방어 (point defnse)를 위해 개발한 요격기이다. 때문에 빠른 속도와 기동력 대신 항속거리가 매우 짧다. 사람들이 이 비행기는 전투기라기보다 '인간이 탄 로켓'이라 부를 정도로 매우 속도가 빨랐다.
F-102 델타대거 (Delta Dagger)는 1950년 중반 소련의 폭격기 차단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전투요격기다. 공대공 요격이 주목적으로 앞날개와 꼬리날개 구분이 없는 서방 최초의 델타익 전투기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미국은 델타익 전투기를 선호하지 않는다. 따라서 당시 F-102에 대한 공군의 평가는 좋지 않았는데 그것은 기능상 이유보다는 당시 운용되었던 F-104, F-105, F-4 기종의 성능이 월등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 전투기종은 터키와 그리스가 1974년 키프로스를 둘러싸고 교전을 벌였을때 양쪽 모두 이용한 기종으로 국제사회에서 그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월남전에서 쓰였던 UH-1 휴이 헬기도 보였다. 초기에는 부상자 수송용으로 이용되다가 정글 속 병력이동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헬기를 이용해 병력을 투입하는 헬리본 작전의 일환으로 이용되었다. 고등학교 다닐 적 곧잘 보았던 '머나먼 정글(Tour of Duty)', '지옥의 묵시록(Apocalyse Now)', '플래툰(Platoon)', '햄버거힐(Hamburger Hill)이 생각난다. 생각해보니 가장 최근에 보았던 월남전 영화는 미국에 오기전 보았던 '위워솔져스 (We were soldiers)'인데 할 무어 (Hal Moore) 중령이 대대 병력을 이끌고 이 헬기를 이용하여 작전지역으로 이동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전시장에는 2004년 성룡이 나왔던 "80일간의 세계 일주 (Around the world in 80 days)"에서 비행 기계로 촬영된 모형이 있다. 이 비행기계는 영화촬영시 실제로 이용되었으며 촬영후 영화제작자가 한동안 가지고 있다가 2006년 이 곳 박물관에 대여되었다고 한다. 이 기계는 날개가 움직이고 모터를 이용하여 프로펠러가 돌아가도록 제작되었다. 아들 녀석은 다른 전투기 구경 때문인지 이것을 보고 시큰둥했는데 딸아이가 꽤 관심을 가졌다. 아래 2004년 80일간의 세계 일주 예고편을 유튜브에서 가져왔다.

전시관 한 쪽에는 국제 우주 정거장에서 행해지는 여러가지 실험 기구 및 장비를 보여주는 캡슐이 있다. 아들녀석이 혹시나 우주선 실내 조종석이 있는줄 알고 엄마를 끌고 들어갔다가 실험장비만 있어서 실망하고 나왔다.

스타워즈 영화에 나오는 X형 스타 파이터 모형도 전시되어 있다. 이 모형은 루크 스카이워커(Luke Skywalker)가 조종했던 비행기 크기의 3/4 정도로 제작되었다. 스타워즈에 출연했던 제작진과 배우들의 사인이 들어가 있다고 하는데 가까이서 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다. 영화에서 보던 X형 전투기를 보니 어릴 적 코흘리개 시절이 덩쿨째 따라온다. 그때 그 시절 만화에서나 보던 우주전쟁을 실사판으로 본다는 사실이 신기했고 그런 영화를 볼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해했었다. 생각해보니 정말 오래전 일이었구나.. 그리고 문득 내가 이렇게 나이먹어버렸구나 하는 현타가 온다.
어린 시절, 전쟁 무기의 진정한 용도와 그 실체를 알지 못한채, 단지 멋지다는 이유로, 영웅주의적 로망에 젖어 동경하고 관심을 가졌다. 이런 무기 발전이 전쟁을 억제하고 자국민과 국가를 보호하는데 필요할 수도 있겠다. 다만 책과 영화를 통해 본 전투기들이 멋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판타지를 키워왔던 내 어린 시절이 알 수 없는 심정으로 다가온다. 내 아이들은 이것을 보고 나중에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가지게 될까. 그리움도 슬픔도 아닌 묘한 감정을 가진채 박물관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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