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ram's Life
[독후감] 토지 제9권 - 박경리 본문

토지 제9권에서는 평사리 사람들이 용정촌에서 진주로 돌아온 후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다. 1919년 삼일 만세 운동 직후 민중들의 실날같은 희망이 꺼져가는 절망감과 패배감을 다양한 이들의 시선을 통해 잘 묘사하고 있다. 술에 쩔어 모든 것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상현의 모습은 비로소 자기자신으로 살아가는 길상의 의지있는 모습과 대비된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평사리로 돌아온 홍이가 겪는 괴로움은 단순한 성장통이 아닌 자신의 아비가 가진 업보를 짊어지는 과정을 표현하는 듯 하다. 조선땅에서 독립운동 하는 사람들 사이 벌어지는 갈등은 환이, 지삼만 그리고 윤도집 간의 팽팽한 긴장관계로 잘 그려졌다. 한복이 형 거복, 혹은 김두수를 만나는 장면은 비록 서로 다른 대척점에 서있더라도 형제간 그리움, 뜨거운 가족애를 넘을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글을 읽으면서 나는 마치 홍이가 되어 삶의 비탄에 빠지고, 한복이가 되어 잃어버린 가족에 가슴아파하고, 상현이 되어버린 내 자신에 분노하기도 했다.
읽으면서 내가 공감이 간 표현들을 중심으로 왜 이 표현들이 마음에 와닿았는지를 아래에 기술해보고자 한다.
용정촌에서의 추억이 홍이의 현재를 비참하게 만들었고 또 오만스럽게 했는지, 하여간 홍이는 친구들에게 냉담했으며 진실된 제 목소리로 얘기하는 일은 없었다.
마음의 어머니를 잃고 의지가 되었던 친구들과 헤어지게 된 후, 아버지마져 몸져 누우면서 홍이가 감당해야할 현실의 벽은 고통스러웠으리라.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의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았을거늘 용정촌에서의 추억은 그의 마음을 더욱더 옥죄이는 고통의 족쇄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세상을 찾아 알게된 새로운 사람과 경험은 나의 무지했던 과거를 비참하게 만들었고, 그 비참함의 감정이 나를 오만하게 했는지, 나는 과거의 지인들에게 냉담해지 시작했고 진실된 나의 목소리를 얘기하는 일이 드물어졌다.
용이의 불운은 시국 탓이기보다 그 자신의 운명, 그 자신의 가치관, 그 자신의 성질에서 비롯되었다 하더라도 관수는 용이 모습에서 핍박받는 제 조상을 보는 것이고 훗날의 자신을 보는 것이다.
나이 드신 누군가를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본 적이 있는가. 내 아버지, 내 친지, 내 선배..... 그 사람들을 보며 내 훗날의 자신을 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가진 적이 있는가. 나는 그리 되지 않겠다고 가슴속으로 메아리쳐본 적이 있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나오는 것은 나역시도 그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는 자조섞인 한풀이 때문인가.
앞 뒷일 생각 안 한께 젤 편하구마.
가끔씩 우리는 삶의 길바닥에서 쓰러져버릴 때가 있다. 갑자기 병들어 몸을 움직이지 못하거나, 직장을 잃었거나, 사업이 망해 정말 오갈데가 없어지거나. 그럴때 어쩌면 앞 뒷일 생각 안하는 것이 정말 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죽어 이 몸이 없어져도, 내 자존심이 갈기갈기 찢겨나가 마음이 더이상 이 세상에 있고 싶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 때 마음속이 별안간 평안해지기도 한다.
용이는 임이네에 대한 애증을 이제 모두 넘어서 버린 것이다. 영원히 화해할 수 없는 대상에서 그 미움마저 거두어버린 것이다. 그것은 용이의 삶, 삶의 종말, 생명의 불씨가 꺼져버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모른다.
영원히 화해할 수 없는 대상에서 그 미움마저 거두어버린 마음. 삶의 가치관이 너무나도 다른 나머지 이제는 서로 마주치는 순간마저 무의미해지는 관계이다. 나는 그 관계를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방관하고 있는 것인가.
서둘다 보면 말의 순서를 찾지 못하고서 냉큼 한마디, 자기 혼자 이해하는 동문에 서답을 내던지고선 그것이 정녕 서답인 것을 깨달았을 때는 입이 붙어버리는 것이다.
미국에서 살면서 이런 경우가 참 많았다. 서툰 영어로 이야기하다 냉큼 한 마디 동문서답을 던지고 스스로 무안해 하던 적이 어디 한두번이던가? 혼자서 샤워하다가 갑작스레 그 무안했던 기억이 떠올라 혼자서 욕하고 소리지르곤 했다. 재밌는 것은 그것은 나만의 경험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벗도 했던 유사한 경험이라는 거다.
못 다 살고 가면 차생에서 또 고생할 것인께로 살아보는 데꺼지 살아보고서
정말 이 순간이 힘들어 이 생을 마감하려 한 적이 젊은 시절 한때 있었다. 지금 이 문구를 보니 이해가 된다. 못 다 살고 이 생을 여기서 마감하면 다음 생에서 또 고생할꺼라고... 그러니 살아보는데까지 살아보자고...
들었을 순간에는 묵은 상처를 지져대는 것만 같았다.
가끔씩 사람들은 의도적이든, 실수이든 간에 다른 이의 묵은 상처를 지져대는 말을 할 때가 있다. 혈기 왕성하던 시기에는 대놓고 화도 내고 눈물도 흘려보건만 지금은 냉정함을 유지하려 애를 쓴다. 물론 그런 말을 듣지 않도록 상황을 만드는 노련함도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사람마다 한 가지 설움이야 다 있는 기고, 내 앞에서는 그러지 마라. 피장파장 아니가.
누구나 가슴 속에 한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의 불행이 온 세상의 불행은 아니듯이. 둥근 세상 마냥 내 인생에만 모서리진 빌어먹을 놈의 세상은 아니란 말이다. 그러니 너무 징징대지 마라.
우는 아이를 어르는 아비의 모습, 그 풍경은 왠지 그에게 마지막 삶의 보루같이만 느껴지는 것이었다.
어려운 유년생활을 보낸 사람이 아버지가 되어 그 자식을 정겹게 챙기는 모습은 우리에게 엷은 미소와 더불어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한다. 그 사람이 보냈던 고통과 회한의 나날들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지 않으려는 초그리고 반복시키려하지 않는 무언의 노력이 그런 연민을 가져오는지도 모르겠다.
죽은 놈이나 산 놈이나 따지고 보믄 엇비슷한 기지. 어차피 남의 목심 빌리가지고 사는 기분인데 머. 죽을라 해서 죽어지는 것도 아니겄고 살라꼬 해서 사는 것도 아니겄고, 언제든지 저승차사가 내놔! 하믄은 내놓을 수밖에 더 있건데
팔십년대 청년기를 보내신 어르신들에게 이런 감정을 많이 읽었다. 당시 격동의 시대 다른 이의 희생 위에 살고 있는 그 부채감 때문에 거리로 뛰어나간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때문에 우리는 이만큼의 정신적인 자유와 선택의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자본에 예속되어버린 우리의 현재 삶이 궁핍하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용기와 유연한 선택지를 용인해주는 사회를 바란다면 과한 욕심일까.
어떤 공포와 치욕을 견디고 있는 모습
삶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며 이런 공포와 치욕을 견뎌본 적이 있을 것이다. 군대에서, 사회생활하면서. 그럴때마다 우리는 어떻게 그 순간을 넘어갔을까? 주먹을 불끈 쥐며? 손가락으로 깍지를 끼며? 조용히 눈을 감고 입술을 파르르 떨며 복수의 순간을 상상하며? 아련히 가슴이 아파오는 문구이다.
제각기 시기를 기다리며 잠복해 있는 들짐승 같은 마음 자세를 취하면서 건성으로 변두리 얘기에서 배회하고 있는 것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이야기를 하며 변두리에서 배회하는 듯한 느낌을 가진 적이 많다. 아마도 꺼내기에는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꼭 알고 싶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였던 듯 싶다. 그다지 유쾌한 주제도 아닐 듯 싶다. 내 삶에는 왜이리 유쾌한 추억이 많이 않은 것인가...
언제나 조용하고 무시무시하게 조용한 집안은 썩은 물이 고인 웅덩이요 나태와 오수의 온상
썩은 물이 고인 웅덩이요 나태와 오수의 온상이라 생각했던 곳이 있었다. 그 곳을 견디지 못해 나오면서 뭇사람들의 입방아에 찧이기도 했고 어떤 이에게는 조롱을 당하기도 했다. 그 곳을 빠져나온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왠지 서글퍼지는 것은 나의 추억마져 쓰레기가 되어버렸다는 스스로의 한탄일 것이다.
남강 건너편 대숲이 연둣빛 안개같이 뿌연 하늘에 번져나고 있었다. 강물은 차갑게 푸르다. 강가 바위 언덕은 자줏빛일까 보랏빛일까, 세월에 묵은 빛깔이 중후하게 봄을 지켜보며 때론 미소 짓는다.
모든 생명이 피어나는 봄의 풍경을 이렇게 잘 묘사한 문장이 또 어디 있을 것인가. 1970년대말 박경리 선생님이 쓴 글이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마치 내 고향 인근의 시골풍경을 보는듯한 향수에 빠져든다.
불문율이란 대개의 경우 대중의 충동적 행위였으니까.
불문율이 무엇인가. 대중의 주관적인 잣대이며 감정표출의 수단이다. 대중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충동적 행위이다. 우리는 그 불문율의 잣대를 가지고 다른이를 판단하고 할퀴고 사정없이 짓밟는다. 그리고 그 대중심리를 이용해 이익을 취하려는 자들은 이러한 불문율을 잘 이용하는 존재들이다.
양반들 횡포에 이를 갈던 상민들이 양반들보다 더한 횡포를 천민들에게 부리는 것. 학대하고 학대받고,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이런 세상
대중심리를 이용해 다른 이를 함부로 판단하고 할퀴고 사정 없는 짓밟는 존재들. 그것으로 돈을 벌려는 족속들. 나는 그들을 혐오한다. 사법기관의 횡포에 이를 갈던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 사법기관보다 더한 횡포를 부리는 유튜버들과 블로거들. 그들끼리 서로 학대하고 학대받고,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이 세상이 참으로 가소로울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런 가소로움을 이렇게 표현하는 비겁한 내자신을 비웃는다.
사철 눈 오는 곳에만 있이믄 푸른 풀밭 같은 것은 모리는 뱁이고 반대로 푸른 풀밭에만 살고 있이믄 눈에 덮인 곳을 모릴 기다. 어디 사람만 그렇겄나? 만물이 다 그럴 상 싶은데...... 양반 조준구나 상민 허상안이가 그 중에서도 중뿔나게 나타났다 뿐이제. 저거들만 풀밭에 사는 줄 알고 저거들만 눈구덕에 사는 줄 알고, 그러니 천지가 넓고 사통팔방四通八方이라는 것을 모리기는 피장파장인 기라.
아마도 이 표현은 누군가에게 한번쯤은 이렇게 사용할 것 같다. "글쎄요. 사시사철 눈 오는 곳에만 있으면 습기 차오르는 더운 곳은 모르는 법이고 반대로 더운 곳에 살고 있으면 눈 덮인 곳을 모를꺼 아닙니까? 어디 사람만 그렇겠습니까? 세상 만사가 그렇지요. 선생님이나 저나 각자 자신이 사는 곳이 세상인 줄 알고, 이 넓은 세상의 이치를 모르기는 피장파장 아니겠습니까?"
천대라는 것은 받으면 받을수록 받는 사람끼리 함께 뭉치는게 상정
천대받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조직내 관심을 받지 못하던 사람들끼리 어울려 술잔을 마주하며 서로 위로하던 때가 있었다. 몸과 마음이 힘들던 때였지만 가끔씩 그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용기와 굳은 신념과 영원히 이 길을 가리라 결의하는 데 그 모든 사나이다운 의지 뒤에서 흐느끼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한이다. 아비에 대한 한, 또 자기 자신에 대한 한이다. 아니 자기 자신에 대한 슬픔이다. 그 한과 슬픔은 의지처럼 결의처럼 크게 울려 퍼지는 징 소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꽹과리 소리인가. 감정은 모두가 미진하다. 미진한 것뿐이다. 목구멍까지 울음이 차오르는데 통곡도 못하고 눈물도 흘릴 수 없는 적막한 겨울 바다만 같은 느낌을 석이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정말 이 모든 것이 내가 부족해서 그런 것일까 하는 내 자신에 대한 슬픔은 다른 이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비통한 심정으로 이어진다. 이 느낌을 감당하고 살았던 과거의 순간들은 아직도 아련한 기억에 남아 나태해진 나를 꾹꾹 찔러가며 깨울 때가 많다.
서울에서의 생활은 보복을 위한 각고의 세월이지만 석이에게는 또 아름다운 청춘이기도 했었다.
어찌보면 고향을 떠나온 타국에서의 생활은 내 자신과 내가 마주했던 과거에 대한 보복의 세월이지만 또 아름다운 시간이기도 했었다.
죽음의 자리에서 지난 삶의 날을 생각하듯이, 사랑을 잃었을 때 사랑을 생각하듯이, 회진으로 화해버린 집터에서 아름답고 평화스러웠던 집을 생각하듯이, 어둠 속에서 광명을 생각하듯이, 그러나 서희에게는 생각할 뿐, 기구가 없는 것이다. 생각은 흘러가고 돌아가고 골짜기에서 암벽을 돌아 마을 어귀의 도랑으로, 마음속에는 나비가 날아가고 비어버린 번데기가 가랑잎같이 흔들리고 있는데, 생각의 강물은 방향도 잡지 못한 채 생명의 허무, 사멸의 산기슭을 돌아간다.
과거에 대한 분노와 복수의 심정으로 하루하루 살아온 나날들. 그리고 지나가버린 세월의 산기슭을 지나 산꼭대기에서 바라본 인생은 허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아쉽다. 이 아쉬운 감정도 허무의 일부일까.
다만 다르다면 그땐 냉정했었고 지금은 감정이 앞서는 차이점이다. 그리고 또 그때 이성은 편협했지만 지금의 감정은 포용의 폭이 넓어진 것도 사실이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해본다. 마음 속 감정이 앞서거니 뒷서거니하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냉정한 표정을 유지하는 법을 배웠을 뿐이다. 그때는 이성이 편협하고 다른 이 생각을 헤아리못할 정도로 우둔한 면이 있었으나 지금의 이성은 적어도 다른 이의 생각을 읽어 짐작하고 그 포용의 폭이 넓어진 면도 있다. 그러나 과거의 본성을 억제하고 있을 뿐 고치지는 못하는 것일까. 모든 사람이 다 이럴까? 아니면 내 스스로가 좁쌀같은 인간이 되어버린 것일까.
빈번하게 서희는 절망에 빠질 것이며 회의의 늪 속을 헤맬 것이며 바스라질 듯 감성이 매말라질 것이며, 때론 극도로 예민하고 때론 극도로 둔감해지는 불균형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러나 그가 구축해온 가치관에 의한 판단은 여전히 선명할 것이다.
분노의 대상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교활무쌍한 술수를 서슴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내가 사랑하는 이의 희생을 발판삼아 욕심을 부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결국 저만치 홀로 떨어져 내 자신과 내가 사랑하는 이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최고의 복수라는 결론을 내렸다. 분노의 대상에게 직접적으로 상처를 가해 복수를 하는 것은 결국 나를 절망과 회의의 늪 속에 빠뜨릴 것이며 나라는 인간을 또다른 악마로 탄생시킬 것이라는, 그런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죽음의 추억이 아름다운 것은, 도랑의 물이 황혼에 물들어 보이는 것은 시간이며, 시간은 머물러주지 않는 거짓말쟁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송두리째, 모든 것은 거짓이요 진실 아닌 것만 같다. 죽음도 삶도 비참한 건데, 비참하고 말고.
솔직히 이 글에서 작가가 홍이의 마음을 빌려 무엇을 전달하려 하는지 잘 모르겠다. 죽음을 앞둔 인생의 황혼은 우리가 살아왔던 시간을 투영해주는 것이어서 아름다운 법인데 홍이의 현재상황은 그 모든 것이 거짓말이라 생각될정도로 비참하다는 뜻일까? 그래서 죽음도 삶도 비참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나에게 인생은 아름다움인가? 나역시 죽음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 비참한 상황때문이 아닌 내 자신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린 때문이었다. 그때는 도랑물이 황혼에 물들어보이는 것을 의식할만큼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죽음의 추억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치였다. 그래서 작가의 글이 이해하기 힘들었나?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은 여전히 비참하고 추악하고 치욕스럽다.
감내하기 어려운 치욕과 바닥에 떨어진 자존감은 산다는 것을 비참하고 추악스럽게 치욕스럽게 만든다. 죽음은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 몸부림이 비참하고 추악스럽고 치욕스러운 것인가? 비참하고 추악하고 치욕스러운 것을 벗어나기 위해 또다른 비참과 추악과 치욕을 맞이하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이들이 나의 죽음을 비참하고 추악하고 치욕스럽게 볼 것인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문장이다.
허기 같은 공허, 무거운 청춘이 양어깨를 짓누른다. 누구에게든 위로받고 싶은 강한 충동이 통곡으로 터질 것만 같다.
나의 청춘은 어떠하였는가. 권위가 난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쓸데없이 자라난 허영심과 허기감이 느껴지는 공허감의 연속이었다. 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며 삶의 무게가 내 청춘의 장벽을 사정없이 무너뜨려버렸다. 누구에게 위로받고 싶은 충동은 믿었던 이로부터의 조롱과 무시로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통곡따위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옳은가를 생각하기 위해서 글을 읽는데, 그러나 글을 안 읽어도 생각을 한다면 그것으로 족하고 나머지는 생활을 위한 거야.
나는 성공하기 위해 글을 읽었었다. 남들에게 유식하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 읽었다. 물론 그것은 진정한 독서가 아니었다. 생활을 위한 독서라고 부를 만큼 근면한 활동도 아니었다. 어떻게 살아야 옳은가를 생각하기 위해 책을 집어든 것은 세월이 한참 지난 후 였다. 글을 읽지 않으면서 생각을 한 적이 있으나 그것은 체계적이지 않았다. 이것이 아직도 내가 글을 읽는데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는 이유기도 하다.
네가 한 말은 낱낱이 가슴을 찌르는 말이었다. 옳다는 것보다 진실이라는 뜻에서 말이다.
항상 내자신에게 스스로 하는 말이지만 옳고 그름을 떠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더 불편한 것은 우리는 그런 진실의 총구를 다른 이에게 들이미는 것은 매우 익숙하면서 내자신을 향하는 것은 극도로 회피한다는 사실이다.
고통이라는 것도 자꾸 받으면 단련이 되는 게야. 지금의 너에겐 가장 견디기 어려운, 그런 나이지만 여자, 술, 담배 하면서 크게 타락한 것같이 생각하고 또 남들도 그리 생각은 하겠으나 실상 넌 지나치게 순수한 것을 원하고 있다.
아니면 지나치게 완벽한 것을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 모든 것이 옮아야 했고 깨끗해야 했으니까. 그런 젊은 시절에 상처를 받고 성숙해나가기 보다는 오히려 적응해나가는 것일까? 어떤 영화에 봤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삶에 있어서 고통을 다루는 세가지 방법이 있다. 싸우거나, 순종하거나, 도망가거나. 나는 순종하는 것에 반항하면서도 치열하게 싸우지도 못했다. 비겁한 도망자가 되어 아직도 순수한 것을 원하고 있는 것일까?
얼굴에 아픔이 가시처럼 돋아나는 것 같고 아직도 극복되지 못한 채 지난날이 그림자처럼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만 같다.
누군가가 나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발톱을 드러낸다.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아픈 지난날의 기억과 감정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며 나를 할퀴려든다. 순간 내 얼굴에는 아픔이 가시처럼 돋아난다. 아직도 과거의 그림자 내 주변을 맴돌고 있던 것이다.
노자가 말하기를 가난한 나라에는 남아돌아 가는 것이 있는 듯 보인다.
재밌는 이야기다. '가난한 나라에는 남아돌아 가는 것이 있는 듯 보인다.' 재화와 곡식이 풍성하고 남아돌아가는 듯 보이지만 이것은 결국 피기득권자들을 착취해서 뽑아내 기득권자의 허영와 허위가 가득한 상태를 말하는 것 같다. 그런면에서 우리는 부자 나라인가, 가난한 나라인가. 아니, 질문이 틀렸다. 우리는 부자 나라를 원하는가, 가난한 나라를 원하는가.
무용지물은 무엇이냐, 꾸미는 거다. 사람이란 밥 세끼 때문에 탐하지는 않아. 꾸미는 것이 욕망의 목표가 되거든. 너도 나도, 허상을 향해 뛰고 싸우고 인성이 타락한다는 얘기.
꾸미는 것. 실제를 보지 않고 허상을 향해 뛰고 싸우는 허위의식. 그 허영과 허위의식에 인성은 말라가고 우리 인생들은 썩어들어간다.
인성을 논할 한가한 세월이 언제 있었다구. 먹느냐 먹히느냐 싸움의 연속, 오히려 도덕이란 썩은 물이 고인 웅덩이 속에서 시비되었던 게야. 먹는 것이 바쁜 백성한텐 도덕이라는 것은 오히려 사치였거든.
유교사상이 깊이 뿌리박힌 조선시대, 삼강오륜이 백성들 사이에서 기본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 도덕 속에 썩어가고 있던 신분사회는 민중혁명을 맛보지도 못한 채 열강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말았다. 그런 면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조선시대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암울하고 우리민족을 후퇴시킨 시기라고 보고 있다. 임진왜란 후 조선은 망했어야 했던 나라였다. 군벌이든, 민중이든, 들고 일어나 왕과 사대부들의 목을 쳤었어야 했다. 만일 그랬었다면 우리는 일제시대의 치욕도, 분단의 비극도 겪지 않고, 또다른 시대를 살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신의 저주 같은가 하면 삶의 의지가 승화되어 가는 피의 향기가 물씬 풍기기도 하고 인생은 끝없이 서럽고 그리고 견고한 것만 같다.
피를 보면 생명력이 활활 타오르는 불꽃같이 느껴진다. 붉은 선혈이 낭자한 광경은 신의 저주가 내린 듯한 처참한 모습이지만 생명력이 불을 뿜여 여기저기 불씨를 남긴 흔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 생명력이 다해 재가 되어버린 불꽃처럼 핏자국은 단단하면서 슬프도록 서러운 인간의 삶을 대변하는 것만 같다.
얼마간 냉소적이며 비꼬였고 자기 모순 속에 허우적거리던 용정서의 전반기에 비하면, 그런 모순과 갈등과 열등감은 말끔히 헐리어지고 없는 것 같았다. 섬세하고 때로는 나약했던 면도 없어진 것 같았다. 한마디로 그에게서 넘쳐나는 것은 힘이었다. 무엇을 움직일 수 있는 힘.
나는 한때 냉소적이며 비꼬였고 자기 모순 속에 허우적거리는 철없는 사내였다.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 그런 모순과 갈등과 열등감이 완벽히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직도 섬세하고 나약한 면이 있다. 다만 이제는 어떤 어려움도 타인의 관점에서 헤쳐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고나 할까.
깊은 눈이라 했는데 그 눈의 깊이는 사색에서 오는 깊이는 아니었다. 의지로써 뛰어넘고 시련을 극복한 후에 오는 깊이, 의지의 깊이, 그것은 힘이었다. 그리고 포용할 수 있는 넓이였다.
솔직히 나는 그 정도의 경륜을 가질 생각도 못하면서 이렇게 시간을 보낸다. 사색을 하지만 아직은 포용이 쉽지 않은, 깊은 눈을 가지고 싶어하지만, 실제로는 깊지 않는 그런 아저씨라고나 할까. 의지라기 보다는 쓸데없는 고집을 스스로에게 부리는 고집불통의 아저씨, 하지만 그 고집을 다른 이에게는 부리지 못하는 겁쟁이 아저씨이다.
너의 가난과 너에 대한 핍박을 너의 아버지 너의 형 탓으로 돌리는 것은 네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 네가 없다는 것은 죽은거다. 아니면 풀잎으로 사는 거다. 너는 너 자신을 살아야 하는 게야. 너의 아버지는 너 한 사람을 가난하게, 핍박받게 했지만 세상에는 한 사람이 혹은 몇 사람이 수천만의 사람들을 가난하게 하고 핍박받게 하고, 한다는 것을 왜 모르느냐 말이다!
나의 불행과 나에게 향했던 시선과 차별을 내가 있던 환경 탓으로 돌리는 것은 내가 없다는 애기가 된다. 내가 없다는 것은 내가 죽은 것이다. 아니면 풀잎처럼 사는 것이다. 나는 나자신을 살아야 한다. 한때 내가 섬겼던 사람은 나를 정신적으로 빈곤하게 하고, 핍박했었다. 세상에는 한사람이 혹은 몇 사람이 공부 좀 잘한다고, 그리고 돈 좀 있다고 수천만의 사람들을 가난하게 하고 핍박받게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풍요한 것도 애정이 있어 빛이 나고 가난한 것도 애정이 있어 보람이 생길 테니까 사실 빈부 자체에는 뜻이 없을 게야.
과연 그럴까? 빈부 격차 상관없이 애정 하나만으로 삶이 더욱 빛나고 보람이 생길 것인가?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이 고민인 사람들에게 애정만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불편한 현실에 불평하지말고 바꾸려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피동적 사고 방식이 아닐런지? 임명빈의 여성에 대한 전통적인 사고방식이 잘 드러난 문장이다. 작가 박경리는 임명빈을 통해 당시 불평등한 여성의 처지를 대변하려했을까 아니면 박경리 자신도 그러한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을까? 그녀의 입장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한다.
식자 든 여자 중에는 잘난 체하기 위해서, 그 허영을 채우기 위해서 용감해지는 사람도 있다.
비단 식자 든 "여자"만 그럴까? 진실된 고민없이 허울좋은 지식으로 가득한 식자들 역시 그 허영을 채우기 위해 용감해진다. 화려한 언론의 스포라이트 앞에서 용감하게 잘난 척하고, 현실에 대한 고민 없이 정치로 직행하시는 분들. 그들의 실제 동기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으나 그 용감함 뒤에는 다른 이의 희생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무지함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지 한번 묻고 싶다.
토지 제9권 말미에 등장한 임명희는 아마도 작가 박경리가 평소 생각해왔던 한국의 여성론을 펼치기 위한 인물이 아닐까 한다. 자신 의지와 상관없이 집안의 법도에 순종하는 여성에서 결국 자신을 찾아가는 여성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작가의 욕구가 엿보이는 듯했다. 아마도 다음권에서 좀더 많은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문학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풀 - 김수영 (0) | 2021.08.06 |
---|---|
[독후감] 토지 제10권 - 박경리 (0) | 2021.08.05 |
[독후감] 토지 제8권 - 박경리 (0) | 2021.07.28 |
[독후감] 토지 제7권 - 박경리 (0) | 2021.07.27 |
[독후감] 토지 제6권 - 박경리 (0) | 2021.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