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ram's Life
부부가 같이 요리할 때 생기는 작은 변화... 본문
내가 요리를 시작한 때는 첫째 딸아이가 15개월이 막 지날 무렵이었다.
아이가 음식을 조금씩 먹기 시작하면서 내가 한국에서 먹었던 음식을 먹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때마침 당시 한국 TV에는 30대 남성들을 위한 요리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요리 프로그램 영상을 보면서 하나씩 따라 하며 많은 실패작들을 거듭했다. 그리고 나는 적어도 먹을 수 없을 정도의 음식을 만들지 않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해나갔다. 아내는 실패한 음식을 맛보다가 뱉어내면서도 그다지 싫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어릴 때 먹었던, 그리고 먹고 싶었지만 자주 먹지는 못했던 음식들을 도전해보면서 엄마와 아이가 같이 먹을 수 있는 요리를 하나씩 완성해가기 시작했다.
가정에서 아빠가 또는 남편이 요리를 하기 시작하면 생기는 작은 변화가 있다.
부부가 같이 요리하다 보니 아내가 시간에 쫓겨 요리를 하는 스트레스가 많이 줄어들게 된다. 그에 따라 서로에게 부리는 짜증도 자연스레 줄어든다. 요리라는 행위가 행복한 활동이 된다. 아빠와 엄마가 사이좋게 부엌에서 가족을 위한 만찬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도 요리는 행복한 행위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지난 주말 9살 딸아이와 4살배기 아들 녀석이 요거트에 바나나와 후레이크를 넣어 디저트를 만들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바나나를 숟가락으로 조그맣게 자르고 후레이크 적당량을 빻는 모습을 보며 나와 아내는 웃음이 나왔다. 가끔씩 요거트를 여기저기 흩날리는 실수를 하지만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행위에 아이들은 만족감을 느끼는 듯하다. 예쁜 컵에 서툰 솜씨로 디저트를 담아내어 아빠와 엄마에게 대접한다.
이 세상의 어떤 디저트에서도 절대 느낄 수 없는 달콤함을 즐겨본다. 나에게 그러한 달콤함을 선사해준 아이들의 행위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아이들은 부부가 같이 요리하며 준비한 음식을 먹으면서 그러한 준비과정이 행복한 행위라는 것을 인지한 것일까? 나름 행복한 추론을 내려본다.
내가 아는 한국의 밥상은 가족들의 배고프다는 표정에 쫓긴 어머님의 부산한 움직임으로 차려진다. 행복을 영위하는 행위보다는 가족의 식욕을 해결하기 위한 집안 여성들의 의무활동이다. 그렇게 준비된 음식을 가족은 그저 먹는다. 가끔씩 맛있다는 한 마디를 툭툭 던지겠지만 맛을 음미하기보다는 식욕을 해결하는 식사가 된다. 요리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가지기보다는 잘 먹었다는 포만감에 행복을 느낀다. 요리에 대한 감사함이 없으니 요리의 행복함을 알지 못한다. 아이들도 먹는 행위에 관심을 둘 뿐 요리과정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다.
남성들이 요리에 관심을 가지면 집안이 행복해진다. 아이들이 식사를 대하는 태도가 바뀐다. 아빠가 엄마와 같이 요리하는 것을 보며 아이들은 보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음식이라는 부산물보다는 요리라는 창조적인 행위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가족 모두가 즐기는 요리와 만찬. 이것이 아빠가 요리에 관심을 보이고 부부가 같이 요리를 하면서 생기는 작은 변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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