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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마운트 에반스: Mt. Evans

Barram 2021. 6. 11. 13:40

록키산맥 트레일 리지 도로 (Trail Ridge Road)와 그랜드 호수 (Grand Lake) 구경을 마치고 마운트 에반스 (Mt. Evans)로 향했다. 약 1시간 30분동안 산길 사이사이를 달려서 마운트 에반스 방문자 센터에 도착, 전날 구입한 입장허가권을 제시하고 마운트 에반스 경관도로(Mt Evans Scenic Byway)를 달리기 시작했다. 마운트 에반스는 해발 14,271 ft (4,350 m) 높이의 산이며 그 정상까지 포장도로가 이어진 산이다. 보통 히말라야 등정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베이스캠프를 차리는 곳이 약 해발 4,300m 정도이고 그 곳에서 고산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니 마음 준비를 단단히 했다. 

마운트 에반스는 콜로라도 제 2 대 주지사인 존 에반스 (John Evans)의 이름을 따서 불리게 되었다. 산 정상으로 향하는 경관도로는 산 높이에 따라 서로 다른 생물분포대(life zone)을 보여주는데 그에 따라 확연히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방문자 센터 입구에서부터 펼쳐진 울창한 수풀림과 호숫가를 지나 고목숲 (ancient tree forest)를 통과한다음 수목 경계선 (timberline)을 지나면 나무 하나 없이 바위들만 있는 고산지대(alpine environment)가 나온다. 이 곳은 마치 알프스 산맥의 고산지대와 비슷하고 날씨는 북극의 한여름 날씨라고나 할까.  

고산지대에 다다러 도로포장상태가 조금 안좋아진다. 오랫동안 도로 정비를 하지 않아서 일까. 바위 낭떠러지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도로에는 폭도 그다지 넓지 않는데 가드레일도 없어서 가끔씩 도로변 낭떠러지 아래 부분을 보면 아찔함을 더해 두려움마져 든다. 

산악도로를 타고 계속 올라가다보면 도로주변가에 쌓인 눈으로 가득하다. 마운트 에반스 경관도로는 5월말까지 차량 운행 및 출입이 제한된다. 우리가 갔던 때가 6월 초였지만 고산지대 도로는 아직도 눈이 가득했다. 한쪽에는 아찔한 낭떠러지가, 한쪽에는 언덕에 가득 쌓인 눈이 우리를 가뜩 주눅들게 만든다.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꽉 쥐고 천천히 올라가는데 고소공포증이 있는 아내 얼굴에는 긴장감과 불안감이 역력하다. 아이들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가 겁먹었다며 놀려댄다. 

지그재그로 이어진 이 산악도로는 1923년 7월에 건설이 시작되어 1930년 완공되었으며 1931년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이 도로는 현재까지 미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포장도로라고 한다. 주로 승용차와 SUV만 출입이 가능하며 도록 폭이 넓지 않아 큰 버스와 트럭은 출입이 허가되지 않는다. 가끔씩 운 좋을 때 도로부근에서 록키산맥 산양(Mountain Goat)와 사슴(Bighorn Sheep)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조심스러운 운전 끝에 겨우겨우 서미트 호수 (Summit Lake)에 도착하였다. 산 정상 가까이 산비탈에 빙하가 생기고 여름철에는 그것이 녹아 만들어진 호수이다. 여름에도 찬 공기로 인해 물이 증발하지 않고 가을에 다시 얼어 빙하가 되면서 물이 계속 상존하게 되었다. 생태과학자에 따르면 이곳에는 북극에서만 관찰되는 식물이 보이기도 한다고 한다.

Summit Lake

눈으로 쌓인 주차장으로 들어서서 차를 주차시키는데 표면이 미끄러워서 그런지 주차가 쉽지않았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매서운 겨울바람이 온몸을 때린다. 트렁크에서 겨울재킷을 꺼내입고 호숫가로 향했다. 눈이 잔뜩 쌓여 길이 미끄러운데 신발은 여름운동화라서 물기가 쉽게 스며들었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호숫가는 살짝 얼어있었고 그위로 펼쳐진 산비탈과 맑은 하늘의 조화가 경이롭다. 이것을 보기위해 손에 땀을 쥐고 꼬불꼬불 그 험한 산길을 이렇게 달려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눈놀이를 하느라 정신없고 아내는 연신 셔터를 누르면서 풍경을 사진에 담는다. 갑자기 숨소리가 거칠어지며 머리가 띵한 느낌이 들었다. 공기가 희박해서일까. 숨이 가빠지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약 10여분 정도 시간을 보냈을뿐인데 벌써 고산병 증세가 생기나 싶어 덜컥 겁이 났다. 강한 겨울바람과 젖어버린 신발 탓인지 아이들도 차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마운트 에반스 정상인 윔블 전망대 (Womble Observatory)로 가는 길 

차에 돌아와 눈앞에 보이는 마운트 에반스 정상으로 계속 운전하고 갈 것인지에 대해 아내와 이야기했다. 서미트 호수에서 마운트 에반스로 가는 길은 구불구불한 정도가 지금까지 운전해왔던 길에 비해 더 심하고 경사도 가파르다. 아내도 숨이 가쁘고 머리가 아파온다면서 이만 내려가기를 원했다. 결국 우리는 정상을 눈앞에 두고 방향을 돌려 산을 내려왔다. 솔직히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다음에 또 오면 되지 하고 혼잣말을 하는데 아내가 결코 그런 일은 없을거라 단언한다. 음.. 나중에 아이들만 데리고 와야겠다. 하하...

Mount Goliath Natural Area & Dos Chappell Nature Center

산악도로를 따라 내려오면서 고산지대가 끝나는 수목경계선에 이르는 지점에는 마운트 골리앗 자연생태 및 도스 채플 자연보호 센터(Mount Goliath Natural Area & Dos Chappell Nature Center) 건물이 있다. 수목경계선에 따른 수목분포도를 보여주고 이에 따른 고목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놓은 곳이다. 이 곳 화장실에서 둘째 아이가 겨우 대변을 보았는데 화장실을 나오자 마자 "아빠 나 드디어 응까했어요!!"라고 크게 외친다. 하필 젊은 공원관리인이 건물 옆에서 간식을 먹고 있다가 그 소리를 듣고 피식 웃는다. 나는 무안한 표정를 지으며 사과하다가 같이 웃어버렸다. 참 그에게도 나에게도 재밌는 기억이겠다.

Mount Goliath Natural Area & Dos Chappell Nature Center

고산지대와 고목 수림과의 경계선에서 나는 광활하게 펼쳐진 록키산맥과 그 높이를 체감했다. 한때 히말라야 산맥 베이스캠프에 가보고 싶다는 희망이 있었는데 물론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대리충족을 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고산병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그 기분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내려오는 길은 생각보다 쉬었다. 긴장하고 어려운 운행을 마친 뒤라서 그럴까. 차창을 활짝 열었다. 초록으로 펼쳐진 숲속을 지나며 이렇게 숨을 편하게 들이쉬고 숲속 바람을 미소짓는 얼굴로 맞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하며 덴버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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