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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매니토우 인디언 암굴 주거지: Manitou Cliff Dwellings

Barram 2021. 6. 12. 14:07

매니토우 인디언 암굴 주거지 (Manitou Cliff Dwellings)는 콜로라도 스프링 (Colorado Springs)시의 서쪽, 신들의 정원(Garden of the Gods)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고대 인디언 거주지 및 유적지로 생각하지만 이 곳은 개인 소유의 박물관으로서 유타, 콜로라도, 애리조나, 뉴멕시코주 경계선이 마주보고 있는 포어코너스(Four Corners) 지역에 널리 분포되어있는 고대 푸에블로 인디언들(The Ancestral Puebloans)의 암굴 주거지를 재현해놓은 곳이다. 대부분의 암굴 주거지가 인적이 드문 계곡에 위치하고 있어 접근성이 좋지 않고 부주의한 방문객 또는 도굴꾼으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1907년 이 곳에 인디언 암굴 주거지를 그대로 재현해놓았다고 한다. 진짜 암굴 주거지를 보려면 인디언 보호구역인 메사 버데 국립 공원 (Mesa Verde National Park)이나 차코 문화역사 국립공원(Chaco Culture National Historical Park)으로 가야 한다.

24번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커브길에서 이 곳 박물관 입구를 뒤늦게 발견하고 속도를 줄이는데 뒤에 차가 없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상당히 애를 먹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차들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이 도로를 지나고 고속도로 분리대가 곳곳에 있어 유턴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박물관 주차장 입구에서 입장권을 구입하였다. 어른 $12, 4~11살 아이는 $7.50이었다. 입구를 지나면 주차장 요원이 주차할 장소를 안내해준다. 차에서 내리자 낭떠러지 아래 지어진 인디언 암굴 거주지가 보인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인디언 암굴 거주지 모형

아이들이 처음 보는 암굴주거지 모습에 상당히 관심을 나타냈다. 우선 암굴 주거지로 가는 입구에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인디언 주거지인 티피 (Tipi) 텐트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인디언 전통 주거지 텐트 티피 (Tipi)

고대 푸에블로인디언들은 유목생활을 하는 다른 인디언부족들과는 다르게 한 곳에 정착하여 수렵채집과 더불어 농경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타 부족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낭떠러지에 암굴을 여기저기 만들어서 마치 아파트처럼 여러 거주지를 연결시켜놓은 형태의 군락지를 형성하였다.

고대 푸에블로인디언들은 다른 인디언들에게 아나사지 (Anasazi)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아나사지는 나바호(Navajo) 인디언 부족에게 아주 오래된 적 (Ancient enemies)라는 뜻으로 우리말로 해석하면 '옛날 옛적부터 오랑캐'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다. 이것으로 볼때 나바호 인디언과 푸에블로 인디언들은 오래전부터 서로 우호적인 관계가 아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물론 푸에블로 인디언은 자신의 조상이 아나사지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암굴 거주지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

암굴 거주지 여기저기에서 사진을 찍었다. 쉽게 볼 수 없는 곳이라 아내도 나도 휴대폰으로 아이들 모습과 함께 기록을 남긴다. 아이들도 여기저기 들어가는 입구 사이사이를 들여다보며 즐거워한다. 

첫번째로 들어가본 거주지는 4가족이 거주한 듯한 4개의 방을 가진 곳이었는데 1층과 2층으로 나뉘어 있다. 바깥으로는 2층 입구와 창문, 그리고 고기나 야채를 말리기 위해 기다란 막대기를 꼽는 구멍 등이 있다. 무너져버린 집 벽 사이로 걸어서 들어가는데 아이들이 엄마 아빠 손을 꼭 잡는다. 마치 귀신이 나오는 집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쓰레기처리장 (Refuse area)

암굴거주지 내부로 들어가서 처음 본 것은 쓰레기처리장 (Refuse area)이었다. 이 쓰레기 처리장은 포어코너스에 분포된 암굴거주지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장소인데 인디언들은 주로 이 곳을 쓰레기를 버리고 칠면조를 사육하는 장소로 이용했다. 부족내에서 사람이 죽었을때 날씨가 좋은 여름에는 주로 거주지 부근 지역에 시체를 매장했지만 날씨가 추워 땅이 얼어버리는 겨울에는 쓰레기 더미에 시체를 묻어두었다가 여름에 이장을 한다. 추운 겨울 날씨에 주로 옥수숫대, 장작을 태운 후 남은 재, 칠면조 깃털과 오물이 시체를 잘 보존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키바 (Kiva)

쓰레기 처리장 옆에는 키바 (Kiva)라고 불리는 원형의 커다란 방이 있다. 반지하로 되어있는 이 방은 인디언 부족 사람들이 신성한 종교의식을 행하거나 부족 회의를 할 때 이용되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그 구성원은 주로 부족의 남성이었다고 한다. 당시에 반지하로 지어진 키바는 향나무 가지들을 이용하여 천장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찰흙을 발라서 천장을 완성했다.  천장 중앙에는 조그마한 사각형 출입문을 만들고 사다리를 이용해 키바에 들어갔다고 한다. 방 내부 중앙에는 장작불을 태우는 불구덩이가 있었는데 출입문에서 사다리를 타고 키바로 내려갈 때 방 안에서 태우는 장작불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맞으며 내려가게 된다. 고대 푸에블로인은 이 행위가 사람의 영혼을 다스리는 신성한 행위로 보았다. 불구덩이 옆에는 조그마한 구멍이 있는데 푸에블로인은 이것을 시파푸(Sipapu)라 부르며 사람이 출생하거나 사망할때 그 영혼이 조그마한 구멍을 통해 흘러들어간다고 믿었다. 아마도 그들은 대자연의 기반이 되는 땅 속에서 그들의 영혼이 스며들어 다른 생명체와 조화롭게 산다고 믿었던 듯 싶다. 대자연의 법칙에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며 그들 자신 역시 자연의 일부로 여기며 살아간 고대 푸에블로인들의 정신적 사상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들의 정신세계는 물질문명을 기반으로 배타적이고 속세에 찌든 현대의 어떤 종교보다도 심오하고 진실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비단 고대푸에블로인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조상들이 섬겨왔던 무속신앙도 그 결을 같이 한다. 산신령, 삼신할머니, 마마신, 풍신, 처용바위 등 지금은 미신이라 치부해버린 우리나라 전통무속신앙은 어쩌면 우리 영혼 그 자체를 신비스런 자연의 일부로 간주하고 우리 조상의 생활 일부로 자리잡았었다. 이런 신앙에는 종교적인 편견이나 종교때문에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고 심지어 죽이는 일이 있을 수 없다.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재앙이나 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무기삼아 사람들에게 믿음을 강요하고 권력자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현세의 종교는 인간 존엄 측면에서 무속신앙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겠는가?

암굴 거주지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아이들

아이들은 여기저기 방을 둘러보며 바쁘게 돌아다닌다. 마치 신비스런 동굴에서 보물찾기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이 알지 못하는 미지의 장소에서 무엇을 찾는지 알지 못하면서 두리번두리번 거리는 것이 아이들의 미래에 펼쳐질 인생의 여로를 미리 학습하는 것 같다. 아이들의 미래가 어떻게 흘러가든 어느 한 쪽에 휘둘리지 않고 세상 모든 것과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게 살았으면 하는, 그런 아빠의 마음이 든다.

고대 푸에블로인디언들은 기원전 1,200년에 출현하여 그들 나름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원후 750년경 그들은 유목생활에서 농사를 짓고 정착생활을 시작하며 그들만의 아나사지 (Anasazi)문화를 형성하기 시작했는데 암굴거구지도 아마도 그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로 번성했던 인디언 암굴거주지는 1200~1300년대 사이에 거주자들이 갑자기 사라져버리고 폐가로 남아버렸는데 그 이유는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당시 기후 및 지리적 상황을 유추하여 고고학자들은 아나사지 문명이 사라진데 대해 여러가지 학설을 제시하고 있다. 혹자는 20년 이상 이 지역에 지속된 가뭄이 농경정착 생활을 불가능하게 했고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리오그란데 강변으로 이주하여 다른 인디언들에 흡수되었다는 설이다. 어떤 이는 코만치나 아파치와 같은 유랑민족에 의해 지속적인 약탈이 이루어지면서 사람들이 암굴거주지를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는 설도 있다. 가장 설득력을 가지는 설은 암굴거주지가 대규모화되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인간활동에 의한 환경오염이 증가하고 그로 인해 전염병 확산과 자원부족으로 결국 사람들이 암굴거주지를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는 설이다. 이 가설이 찬란한 아나사지 문명을 건설했던 고대 푸에블로인디언 뿐만이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고 미래를 살아갈 우리 인류에게 적용될 수 있다는 불안한 예감이 드는 것은 왜일까?

스페인 문명 영향의 유산: 공중화장실과 화덕

암굴 거주지에서 박물관으로 가는 길목에는 스페인 정복자의 영향으로 변해가는 인디언 삶의 흔적을 보여준다. 한쪽에는 공중화장실터를 보여주는 건물과 빵을 구우는 화덕이 보인다. 외부세력의 침략에 무너져버런 인디언 문명의 씁쓸함이 묻어난다. 자연을 존중하고 인간의 영혼을 존중하는 정신세계가 물질문명에 굴복해버린 패배의 역사를 겪으며 민족 괴멸의 위기를 맞고 있는 인디언의 모습은 우리에게 어떤 메세지를 던져주고 있나. 뜨거운 햇살 아래 목덜미에는 뜨거운 땀이 흘러내린다. 그런 내 곁에서 아들녀석은 말없이 화덕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박물관과 선물매장 모습

암굴거주지 전시장 옆으로 어도비(adobe) 형식의 점토로 지어진 전통건물은 박물관과 선물매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푸에블로 인디언의 역사와 그들이 사용했던 자기, 활, 문화유적들을 전시해놓은 이 곳은 곳곳에 선물판매대가 자리잡고 있다. 그들의 삶을 지탱해주던 물건들이 이제는 고대 인디언을 상징하는 마스코트로, 기념품으로 둔갑하여 관광객들에게 판매되고 있다. 씁쓸한 웃음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시스템 안에 있는 내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은가. 내 웃음이 씁쓸한 건지, 내 삶이 씁쓸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 모두가 씁쓸한 것인지 모르겠다. 이런 씁쓸한 감정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고민하고 다른이와의 관계를 생각하고 이 세상 모든 것과의 관계를 돌아보게 되는 것 아닐까?

아이들은 생각보다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며 자신이 관찰했던 것을 재잘재잘 이야기한다.  앞으로 크면서 그러한 관찰이 보다 풍성한 사유의 밑바탕이 되길 바라며 우리는 유유히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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