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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며드는 것 - 안도현

Barram 2021. 7. 6. 02:39

스며드는 것 -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많은 이가 이 시를 읽고 간장게장을 더이상 먹지 못하겠다고 이야기한다.

간장게장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이 시를 읽으면 밥상에서 간장게장을 쉽게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리고...

가슴속에 스며드는 또하나의 감정.

 

눈을 감는다.

망상이라 생각하고픈 상상이 머리속에 휘몰아쳐 들어온다.

 

선실에는 물이 콸콸 쏟아져 들어온다.

아내와 아이들은 겁에 질린 모습으로 차오르는 물을 피하려고

선실 구석에서 몸을 웅크린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하지만 쏟아들어오는 물이 너무 거세다.

다른 선실에서 울음과 절규가 들려온다.

 

아내를 바라본다.

체념의 눈길을 교환한다.

가쁜 숨을 고르고

겁먹은 아이들의 눈을 천천히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 이제 물 속으로 들어가면 깊은 잠에 빠질거야.

숨이 막히고 답답하겠지만 조금만 참으면 편해질거야.

괜찮아. 우리 이렇게 다같이 손잡고 있으니까.

 

눈을 뜬다.

가슴이 먹먹하다.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가버린 이에 대한 허망함은

삭풍이 지난 후 저어만치 날아가버린 낙엽이 되어 푸석푸석해질 망정,

남은 이 가슴속에 스며들어버린 슬픔과 고통의 심연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 것인가?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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