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ram's Life
[드라마] 행복할거야. 행복할게. (나의 아저씨) 본문
유튜브에서 우연히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 클립을 접했다. 2018년 이선균, 이지은 주연으로 TVN에서 방영된 작품인데 은은하게 가슴에 와닿는 장면 몇부분을 추려내 글을 쓰고 싶었다. 나오는 대사 중에 글로 남겨서 기억하고 픈 문구가 있기도 했다.
행복(幸福)이란 무엇일까.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그 뜻을 살펴보면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를 의미한다.
나에게 행복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내 자존감의 확인이다. 내 존재가 내자신 스스로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 주변 다른 이들에게 유의미한 것이다. 행복의 척도는 내 스스로가 발견하고 개척하며 이루어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망각하고 나를 바라보는 이들의 척도에 맞추어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넘어지기도 하고, 똥물을 뒤집어쓰기도 하고, 추태를 보이기도 하는 법인데 그것으로 우리는 이번 생은 망했다 생각하며 삶의 불행을 단정지어버린다.
드라마에서 박동훈역으로 나오는 이선균은 아래와 같은 말을 한다.
그러니까 봐, 어?
봐
내가 어떻게 행복하게 사나 꼭 봐.
다 아무 것도 아니야.
쪽팔린 거?
인생 망가졌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거?
다 아무 것도 아니야.
행복하게 살 수 있어.
나 안망가져.
행복할거야.
행복할게.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 15화 중에서)
나는 행복할거라고 결연한 표정으로 말하는 박동훈의 모습에서 나는 죽음의 문턱에서 스스로에게 되내였던 말을 생각해본다.
'살아남을꺼야. 그리고 당당하게 살거야. 적어도 내자신에게... 이제 다시는 망가지지 않을꺼야.'
우리는 항상 비교하는 삶을 살아왔다. 달리기에서 몇 등이고, 반에서 몇 등이고, 어떤 대학을 가고, 어떤 직장을 가고, 돈은 얼마 벌고, 자식이 반에서 몇 등을 하고.. 수없이 내 자신을 다른 이와 비교하고, 다른 이에게 비교당하며 살아간다.
그 비교하는 행위에서 우리는 타인보다 우월함에서 오는 행복감에 도취하고,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는 거만감을 가지게 된다. 그 비교하는 행위에 우리는 타인보다 열등함에서 오는 불행함과 내자신을 끊임없이 비하하는 자존감의 추락과 분노를 경험하게 된다.
극중에서 박상훈의 출가한 친구, 윤상원역으로 출연한 박해준이 이선균에게 하는 말이 있다.
이기고 지고가 어딨다고. 다 각자 자기인생이지.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 16화 중에서)
내가 이기고 지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 각자 인생일 뿐.
왜 우리는 타인을 질투하고 자신에게 분노하며 살아야 하는가. 그 분노를 속으로 삭이며 살아왔던 내 자신에 미안함을 느낀다. 그 분노를 다른 이에 터뜨리는 지인의 행보에도 미안함을 느낀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 만들어놓은 감옥안 사슬에 동여매여 살고 있지 않는가하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혼자서 강한 척, 끄덕없는 척, 씩씩한 척 하며 살아도 결국 다른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이 삶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의도치 않게 다른 이에게 신세를 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꼭 갚겠다고 속으로 다짐하건만, 삶의 굴레 속에서 그 마음이 희미해지는 경우는 허다하다. 그것에 자책하여 나는 배은망덕한 놈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후계동 조기축기회 멤버인 이제철역을 하는 박수영이 하는 말을 들었다.
이지안: 꼭 갚을께요.
이제철: 뭘 갚아요~. 인생 그렇게 깔끔하게 사는거 아니에요.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 16화 중에서)
인생 그렇게 깔끔하게 사는거 아니에요. 가끔씩 다른 사람에게 신세도 지고 폐도 끼치면서 사는 것이라고. 그것을 꼭 갚을 필요는 없는거라고. 그 마음만 가지고 있으면 충분한거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준다. 내 힘든 시간, 나에게 도움을 주신 분들이 있었다. 무심하게도 연락을 하지 않고 산지 여러해가 되었다. 그 무심함에 내 스스로 자책을 하던 차, 이 말은 나에게 위로의 꽃 한송이를 안겨주었다.
맞다. 인생 그렇게 깔끔하게 사는거 아니다. 하지만 그 마음만은 결코 잊지 말자.
미국에서 대학원 입학 준비를 하고 있던 3월 어느날이었다. 봄방학 (Spring Break) 시즌이라 많은 학생들은 삼삼오오 여행을 떠나던 때였다. 나는 당시 어학연수생신분으로 여기저기 대학원 원서를 제출하고 있었다.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영어시험점수, 한국에서 제때제때 진행되지 않는 서류준비때문에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때였다. 이미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이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한국에서 직장다니며 돈벌고 결혼하는 친구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컴퓨터를 보며 준비서류를 작성하고 에세이를 다듬다가 밥시간을 놓쳤다. 어둑어둑해진 아파트에서 안되는 요리실력으로 밥을 짓고 한인마트에서 사온 찬거리로 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도대체 내가 뭐하고 있는거지, 그 비싼 돈 주고 여기까지 와서 입학허가를 받을만큼 제대로 된 영어점수도 못받는 내 자신이 한심했다. 남들이 다 쌓는 제대로 된 스펙하나 못쌓은 내가 한심했다. 내 청춘 귀중한 시간을 내자신이 아닌, 다른 이 성공을 위해 낭비해버렸는데, 그 낭비한 시간이 사람들의 조롱꺼리로 전락한 내 처지가 한심했다.
결국 그 밥을 다 먹지도 못하고 화장실에 가서 먹던 음식을 변기에 뱉어내고 얼굴을 수차례 거칠게 씻어냈다. 그렇게 감정을 추스리고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는데 어머님이 전화를 하셨다. 추스러진 감정으로 평상시같이 잘 산다, 별일 없다, 이야기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한동안 노트북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다 순간 가슴 속 깊숙이 고였던 울음이 터져버렸다.
이 장면을 보면서 당시 기억이 떠올라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생각하고 싶지 않던 기억이 살포시 다가와 내 가슴을 사정없이 두들겼다. 눈시울에 눈물이 올라오는 것을 참느라 얼굴이 벌개졌다.
박동훈이라는 인물은 참 흥미로운 인간이면서 나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욕심없이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의 소소한 행복에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캐릭터는 어떻게 보면 내 현재의 모습과 닮았다. 다른 이를 세세히 챙겨주는 따뜻한 마음씨는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왔던 나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보인다.
이 드라마 8화에서 박동훈은 자신을 지탱해왔던 삶의 생각들이 하나 둘씩 부서져 나가는 혼란 속에서 오는 허무감을 독백형식으로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다.
아무것도 갖지 않은 인간이 되보겠다고.
다들 평생을 뭘 가져보겠다고 고생고생을 하면서
나는 어떤 인간이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아둥바둥 사는데
뭘 갖는 건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원하는 것을 갖는다고 해도
나를 안전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
못견디고, 무너지고,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 나를 지탱하는 기둥인줄 알았던 것들이
사실은 내 진정한 매력이 아닌 것 같고.
그냥 다 아닌 것 같다고.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 8화 중에서)
그냥 다 아닌 것 같다. 모든게 다 아닌 것 같다. 내가 하고 있는 일, 가고자 하는 길이 무엇인지, 어딘지도 잘 모르겠다. 망망대해 정처없이 떠있는 배안에서 끝없는 수평선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잘 살았을까? 내가 믿었던 것들,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 그 모든 것이 다 맞는 것일까? 그 진실을 애써 감추고 못본 척 하며 살아온 나에게 이제는 모든 것이 그냥 다 아닌 것 같기만 하다.
솔직히 이 드라마를 다 보지는 않았다. 그저 원하는 장면 클립 하나하나 따로 보면서 올라오는 감정을 서슴없이 기술한 것 뿐이다. 하지만 그 대사 하나하나에서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울컥 솟아오르는 내 감정으로 여과없이 느낄 수 있었다. 나중에 시간되면 드라마 하나하나를 잘 곱씹어보며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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