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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ram's Life

미안해. 우리가 사랑을 시작하던 날. 장난인지 진심인지 욕정인지 사랑인지 내 마음 네 마음 잘 알지도 모르면서 시작했어. 미안해. 우리가 사랑을 표현하던 날. 나는 너와 내가 서로를 탐닉하는 줄 알았지 네가 진정 무엇을 느끼는지 나에 대한 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어. 정말 미안해. 미안해. 우리가 말다툼하던 날. 너에게 나는 너만의 탈출구일 수도 있었을텐데 나는 문을 닫고 열어주지 않았어. 일부러 문을 열고 들어오려 했을때 문을 잠그어 버렸어. 정말 정말 미안해. 미안해. 우리가 사랑을 끝내던 날. 나는 너에게 그 어떤 변명도 하지 않았어. 침묵으로 너의 가슴을 휘저어 놓았어. 그것이 커다란 흉터로 남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어. 너무 너무 미안해. 미안해. 우리가 우연히 마주친 그날. 얼..

멀어진 친구에게. 안녕 친구야. 오랜만에 본 너는 무언가 쫓기듯 할 말이 많고 보여줄게 많은 거 같아. 나는 너와 술 한잔 마시며 덕담 주고받는 치레보다 격 없이 스트레스 푸는 만남을 원했어. 너는 내게 성공을 말했어. 나는 네게 성공을 말한 적이 없는데. 성공과 실패가 네 세상을 지배하겠지만 존재의 이유가 내 마음속을 항상 맴돌아. 너는 나와 자리를 가지며 내가 선물을 바쳐야 할 대단한 사람이라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 너의 그 빛나는 재규어를 보여주고 싶어 했던 것 같아. 너와 나는 말다툼을 벌이며 서로의 진지에 총격을 가했어. 서로가 다름을 표현한다 생각했어. 너는 어느 순간 나에게 타점이 명확치 않은 미사일을 쏴버렸어. 비무장된 내 마음은 미사일 파편을 맞고 산산조각이 되어 피를 흘렸어. 너에게 ..

스며드는 것 -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많은 이가 이 시를 읽고 간장게장을 더이상 먹지 못하겠다고 이야기한다. 간장게장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이 시를 읽으면 밥상에서 간장게장을 쉽게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리고... 가슴속에 스며드는 또하나의 감정. 눈을 감는다. 망상이라 생각하고픈 상상이 머리속에 휘몰아쳐 들어온다. 선실에는 물이 콸콸 쏟아져 들어온다. 아내..

아침 일찍 산타페에서 호텔을 나서다가 호텔 앞에 있는 디스카운트 타이어 샵 (Discount Tire)을 발견하고 타이어 공기압 체크를 했다. 오랫동안 고속도로를 달려왔고 앞으로도 달릴 것이기에 정기적인 타이어와 공기압 체크는 자동차여행에서 필수이다. 산타페를 출발해 오늘 달릴 일정은 산타페 부근에 위치한 페코스 국립 역사 공원(Pecos National Historic Park)과 콜로라도 주에 위치한 로열 골지 다리 공원(Royal Gorge Bridge & Park)을 구경한 다음 콜로라도 스프링에 있는 호텔로 가는 것이다. 아래 일정과 경로를 표시한 구글맵 링크를 걸어놓았다. https://goo.gl/maps/JBt8vLX3sSfrLEjz6 Hyatt Place Santa Fe to Colora..

오늘 하루 - 김남주 어두운 하늘을 보며 저녁 버스에 몸을 싣고 돌아오는 길 생각해보니 오늘 하루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았다 이것저것 짧은 지식들은 많이 접하였지만 그것으로 생각은 깊어지지 않았고 책 한 권 며칠씩 손에서 놓지 않고 깊이 묻혀 읽지 못한 나날이 너무도 오래되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지냈지만 만나서 오래 기쁜 사람들보다는 실망한 사람이 많았다 ...... 나는 또 내가 만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을 것인가 미워하는 마음은 많았으나 사랑하는 마음은 갈수록 작아지고 분노하는 말들은 많았지만 이해하는 말들은 줄어들었다 소중히 여겨야 할 가까운 사람들을 오히려 미워하며 모르게 거칠어지는 내 언어만큼 거칠어져 있는 마음이 골목을 돌아설 때마다 덜컹거렸다 단 하루..

자화상 (自畵像) -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追憶)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90년 전에 지어진 이 시가 내 가슴을 이토록 울릴 줄은 몰랐다.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고해성사가 촉촉이 내 뺨을 적신다. 원하는 것을 소유할 수 없는 나, 그리고..